식당에 가서 설렁탕을 먹을 때, 입맛에 딱 맞고 안 맞고는 내가 넣는 딱 소금 한 스푼 차이다. 스테이크는 소금 몇 알, 후추 몇 알 혹은 불에 굽는 몇초 상관에 맛이 갈린다. 필자가 경험해 본 미쉐린스타레스토랑들의 공통점은 음식이 나올 때마다 서버가 세심히 설명해주고, 접시와 집기들을 바꾸어 준다는데 있다. 사실 음식 맛은 시장골목 어느 허름한 맛집에서 내놓는 한 접시가 더 맛있을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런 레스토랑이 허례허식일 뿐 무가치한 것이라 종종 비하한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치 말아야 하는 것은 미쉐린스타레스토랑이 음식을 다루는 디테일이다. 음식을 ‘맛’ 있으면 그만인 한 끼 ‘먹거리’로 보는 개념을 넘어 ‘먹는 경험’을 통해 ‘오감이 즐거워지는 공간’속 하나의 재료로 본다.
디자인프로젝트나 강의를 맡아 진행하다 보면 참여연구원이나 학생 개개인의 태도를 본의 아니게 관찰하게 된다. 필자의 통계로 보면 대상을 치밀하게 뜯어보고 문제를 풀고자 파고드는 의지가 있는 사람, 소위 ‘파이팅 넘치게’ 디테일을 찾는 사람은 결과물이 늘 좋다.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 디자인을 수식처럼 답이 있어서 그 것을 구하면 그만이라 여기는 수동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좋은 결과물을 얻지 못한다. 디자인어워드를 받은 프로젝트는 콘셉트와 아웃풋에 대한 수십번 리뷰 및 이미지배치, 포스터색감, 폰트크기, 배경까지 깨알수정을 수백번 거친 결과물이었다. 러프한 아이디어를 시간에 쫓겨 제출한 프로젝트들은 좀처럼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과거 필자가 글로벌 완성차기업의 디자이너로 일했을 때에도, 스타일링콘셉트뿐아니라 차체면의 볼륨 정도, 수많은 라인의 센티미터 차이, 기울기와 비례까지 수백번 고민하고 밤낮으로 수정하며 다듬고 다듬었던 스케치와 모델은 디자인경쟁에서 선택되어 실제모델로 세상에 나왔고, 이만하면 되겠지 신경을 덜 썼던 제안들은 경쟁에서 밀려났다.
디자인만 디테일이 필요할까? 아니다. 필자가 아는 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나 공학기술 개발도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원리를 파고드는 디테일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학, 음악, 예술분야에서도 소위 감성, 감각이라는 디테일 깊이가 명작을 결정짓는다.
보통 성격이 유순하고 너그럽다 평판을 받는 사람들은 왠지 감각이 느슨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디테일이 발달한 것으로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즉 예의바른 사람은 자신의 언행이 상대에게 미칠 영향을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는 디테일을 갖춘 사람이다.
이처럼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 훌륭한 식사와 단순한 미각 만족은 물론이고 디자인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가장 큰 가치, 그리고 과학기술과 문학, 음악, 예술까지의 모든 분야, 우리 삶과 인간관계까지도 아주 작은 디테일의 유무에 달려 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격언을 우리는 근검절약이나 끈기의 강조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티끌이라는 디테일의 축척이 만들어내는 결과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대충 대충, 좋은 게 좋은 것, 이런 관습은 이제 버렸으면 좋겠다. 우리의 눈과 귀, 입과 마음을 가리고 제자리에 머무르게 만드는 나쁜 습관이다. 모두 좀 더 민감하면 좋겠다. 신체와 마음의 오감스위치를 ON시킬 때, 둔탁한 세상이 진짜 살아있는 세상으로 바뀐다. 삶도 바뀐다. 정말 입에 맞는 설렁탕부터 더 좋은 디자인, 더 큰 과학적 발견과 인류 삶에 공헌할 기술개발, 더 아름다운 문학, 음악, 예술과 더 좋은 사람 사는 세상, 나라다운 나라가 디테일에 달렸다. 언제까지 대충 대충 살 것인가?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8년 7월 19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디테일’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