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은 여러 가지 피해 현상들을 동반한다. 우리가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지상 구조물의 피해뿐만 아니라, 지진파가 땅 속으로 전파 되면서 땅이 변형될 만큼의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구조물들은 모두 땅의 지지를 받으며 땅 위에 있거나, 땅 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지진으로 인한 지반 변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지진으로 인한 지반 변형에는 산사태, 땅갈라짐, 침하, 측방확산 등이 있는데, 작년 포항 지진 시에도 큰 이슈가 됐던 액상화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액상화는 포화된 흙이 지진등과 같은 급격한 하중을 받았을 때, 흙 속의 공극수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흙속에 갇혀 있게 되면서 수압이 증가를 하고, 유효응력이 감소해 지반이 지지력을 상실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면 흙은 물과 섞여 흐르는 상태가 된다. 구조물의 하부 지반에서 액상화가 발생하면 지반이 침하해서 구조물이 안정성을 잃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1995년 규모 6.9의 일본, 고베 지진 시 광범위한 지역에서 액상화가 발생해 많은 구조물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 후 1999년 규모 7.4의 터키, 코챌리 지진 시에도 많은 건문들을 가라앉거나 기울게 한 액상화가 발생했다. 2010년과 2011년에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규모 7.5와 6.3의 지진들이 도심지 한가운데에 많은 액상화가 발생시켜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건물들이 땅속으로 가라앉으면서 기울거나 차량들이 땅속으로 반쯤 가라앉는 현상이 많이 발견됐다.
2017년 포항 지진 시에도 많은 액상화 현상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건물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지만, 땅속의 고운 모래가 물과 섞여 땅 위로 분출하는 샌드보일 현상이 많은 지역에서 발견돼 액상화 현상이 발생했음을 증명했다. 액상화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투수성이 좋은 고운 흙이 지표면 근처에 존재해야 하고, 지하수위가 얕아야 한다. 그리고, 지진파의 진도가 충분히 커야 한다. 지난 포항지진 시에는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됐다고 볼 수 있다.
포항과 마찬가지로 울산도 액상화 발생이 가능한 조건의 지반일 수가 있다. 울산의 강동 일대는 오래 전에 바다에 잠겨 있던 땅이 1,200만여년 전 솟아올랐다고 한다. 이러한 지대는 충분히 고결되지 않아 연약한 지반과 암반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액상화 현상에 취약할 수 있다. 실제로 지진으로 인해 액상화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기록들을 역사 문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2012년 기상청에서 발간한 `한반도 역사지진 기록’을 보면 1964년에 큰 지진이 있었고, 이로 인해 액상화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관찰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643년 7월 24일(조선 인조 21년 6월 9일)에 발생한 지진 기록에는 울산부(울산)에서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구쳐 나왔으며…”라는 기록이, 그리고 <승정원일기>에는 “물이 샘처럼 솟았으며, 물이 넘자 구멍이 다시 합쳐졌다. 물이 솟아난 곳에 각각 흰 모래 1,2두가 나와 쌓였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액상화를 발생시킬 만큼 땅이 연약하고, 또 충분한 진도의 지진파가 발생했었음을 암시한다.
조선시대에 발생했던 액상화는 기이하기는 했으나 큰 피해는 끼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때의 석조, 목조 건축물들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시설물들과 인구의 분포 현황을 고려하면 액상화 발생은 우리에게 굉장히 위협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액상화 발생 가능성을 알기위한 지반조사가 선행돼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말뚝기초를 깊이까지 설치하거나 시멘트 등을 주입해 지반의 강성을 높이는 등의 액상화 발생을 저지할 수 있는 공법들을 활용해 새로운 건물을 짓고, 또한 기존 건물들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김병민 UNIST 도시환경공학부 조교수
<본 칼럼은 2018년 7월 26일 경상일보 18면에 ‘[현장소리 칼럼] 땅이 갈라지고 모래와 물이 솟구친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