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7월 16일부터 20일까지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의 여름은 습하고 더운데 올 여름은 특별히 더 더워서 방문기간 중에는 폭염주의보와 경보가 지역별로 발표됐고, TV 뉴스에서는 매일 계속되는 폭염과 열대야로 밤에 자다가 사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대응책이 방송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연일 최고온도를 갱신하며 폭염이 계속되고 있고, 이처럼 폭염이 계속되다 보니 에어컨, 선풍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의 사용으로 인한 전력 사용량이 크게 증가해 정부는 전력수요에 대응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름철이 되면 전력 예비율이 낮아져서 정부는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의 실내온도를 28도로 정하고 이를 따르도록 하는 하절기 에너지 절약 정책을 올해에도 어김없이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전력산업기관에 근무하는 종사자들은 남들보다 여름엔 더 덥고 겨울엔 더 추운 환경에서 근무하는 것이 다반사가 됐다.
최근 일본에서는 4년 만에 제5차 에너지기본계획이 발표됐다. 이 장기계획의 골자는 ‘에너지전환’과 ‘탈탄소화’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 시점인 2030년의 전원 구성 목표비율을 발표했는데, 재생에너지 22~24%, 원전에너지 20~22%로 기존의 에너지원 우선 개발 목표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것은 전원믹스정책에서 재생에너지를 ‘주력전원’으로, 그리고 원전과 석탄발전을 ‘중요한 기저전원’으로 결정한 것이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비화석 전원의 비율을 44%, LNG(액화천연가스) 발전과 석탄발전의 비중을 각각 27%, 26%로 설정한 것이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에 가동되던 54기의 원전을 사고 이후에는 모두 가동 중단했는데 현재에는 원자력규제위원회와 지자체로부터 재가동 승인을 받은 9기의 원전이 재가동을 개시해 운전 중에 있다. 그러나 제5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원전 전원의 비율을 20%대로 끌어올리려면 약 30기 정도의 원전 재가동이 필요한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일부 언론이나 국민들이 원전 재가동에 대해 반대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파리협정 준수를 위해서는 원전 재가동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국가 경제의 재부흥을 위해서는 원전 재가동이 필수적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모든 원전을 정지했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정지 중이던 석탄이나 가스를 이용한 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해 필요전력을 보완했다. 그 결과 화석연료의 수입이 급증하게 됐고, LNG를 중심으로 발전용 연료의 수입 부담이 급격히 증가해 2013년 가정용 전기요금과 산업용 전기요금을 각각 19.4%, 28.4% 인상했다. 뿐만 아니라 화석연료 사용의 증가로 온실가스 배출이 급증하게 됨에 따라 대기 내 탄소량이 증가하고 미세먼지 문제를 야기하게 됐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원전 축소와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국가 경제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탈원전을 추진하더라도 전기요금은 올리지 않겠다고 한 공약 때문에 현실적으로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매일 폭염이 계속됨에 따라 최고온도와 최대 피크전력이 갱신되고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탈원전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제 발전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안정적이고 경제적이며 환경 친화적인 에너지원을 이용한 전력공급은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이며, 이것은 국가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기초가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일본에서도 에너지 전환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장기적인 계획과 함께 큰 유연성을 갖고 대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단기적인 에너지 정책추진 보다는 먼 미래를 보고 합리적인 에너지 전환 정책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공약의 이행도 중요하지만 주위를 둘러보고 천천히 유연하게 나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민병주 UNIST 기계항공·원자력공학부 초빙교수
<본 칼럼은 2018년 7월 31일 울산매일신문 19면에 ‘[현장소리 칼럼] 안정적이고 유연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기대하며’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