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80년대 중반에 일본 규슈(九州)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필자가 속해있는 연구실에는 필자가 속해 있는 감마그룹을 포함해 세 개의 실험그룹이 있었다. 세 개의 실험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세미나를 열곤 했다. 이러한 세미나는 평상시에는 각 그룹에서 한명씩 본인의 연구주제를 발표하기도 하고 외부에서 강사가 와서 특강을 하는 형식을 취했다.
다만 봄, 가을 물리학회가 끝나고 나면 항상 학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학회장에서 본인의 논문 외에 관심 있는 분야의 논문 발표를 듣고 그 내용을 발표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학원생들이 학회에 갈 때 연구실에서 여비 등 출장비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는 연구비로 출장비를 지원하는 것에 대한 책무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분야와 연관된 타 분야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것은 물론 학회 출장을 가지 못한 연구자와 학생을 위해 새로운 연구내용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 알리는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가 대학원생 때부터 익숙해서인지 일본교수나 연구자들은 국제학술대회에 가면 학회가 진행되는 기간에는 학회장을 떠나지 않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우리나라 정부의 과학기술연구개발 예산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연구비 유용과 연구활동 부정사례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참가비만 내면 제대로 된 심사 없이 학술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학술단체인 ‘WASET(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에 관한 내용이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한 언론사는 이름만 넣으면 1초 만에 논문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으로 가짜 논문을 작성한 뒤 와셋(WASET)에 제출해 참여한 뒤 취재했다고 한다. 취재결과 발표 자료도 없이 2분 만에 발표를 끝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참석을 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보도로 유명한 국립대 뿐 아니라 사립대 교수들의 일탈을 본 국민들의 연구 현장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고 그에 따라 많은 선량한 연구자들까지도 함께 신뢰가 떨어져 연구현장의 사기까지 저하되고 있다.
연구 현장에서는 이번 WASET 같은 사태 방지를 위해서라도 ‘일벌백계’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상당수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벌백계’의 조치 뿐 아니라 과학계 자체적으로 자정의 노력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창조경제나 4차산업혁명과 같이 수월성을 요구하는 현 시점에서는 연구성과 평가 및 연구비 관리에 대한 제도 개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연구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조업에서 제품의 제조 공정을 만들 듯이 연구성과도 정량적인 지표에 근거해 판단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을 도입할 당시 외국의 기술을 들여와 산업경제를 일으키기 위한 노력으로 인력양성이나 연구성과를 모두 외국을 모방하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 국가의 연구비도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으므로 연구성과에 대한 개념과 방법도 바뀌어야 된다. 법과 제도를 위반할 수밖에 없는 관행도 있었으며, 일부 과학자들의 잘못도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과학계의 잘못된 관행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구성과를 부풀리는 행동도 이제 그만해야 한다.
적어도 정부로부터 받은 연구비는 국민의 세금이므로 과학자는 연구비를 투명하게 집행하고 연구자의 책무에 충실히 하는 등 우선적으로 법과 제도를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민병주 UNIST 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 초빙교수
<본 칼럼은 2018년 9월 10일 울산매일신문 10면에 ‘[현장소리 칼럼] 연구자의 신뢰’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