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에서 어떤 선수가 매우 희박한 성공률을 넘어 골을 넣을 때 ‘그림 같은 득점장면’이라거나 ‘슛이 예술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림같다’는 것은 곧 가장 높은 수준, ‘극찬’의 표현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기술, 공학의 궁극적 경지를 의미하는 단어가 바로 ‘Art’다. 영어로 최고 혹은 최신 기술은 ‘State of the Art’라고 나와있다. 미술, 예술과 같이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본성이다. 새발견과 지식의 축적에 토대한 과학기술의 진보를 통해 인류의 삶을 증진하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유사성이 없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영역인 예술, 미술, 디자인과 과학기술은 본래 하나의 궁극점에서 만나는 가치이자 본성이다.
인간은 지·덕·체를 갖춘 삼위일체의 존재로 성장할 때 훌륭한 사람이 되고, 교육이란 이 성장을 관장하는 축이다. 미술, 디자인은 ‘지’영역을 채우는 여러 분야 중 하나다. 인문학, 과학, 공학을 포함해 어떤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미술, 디자인도 스스로만 강조되거나 비대해지면 균형이 깨지고, 아름다움을 잃게 된다. 안타깝지만 오늘의 교육현장이나 실무현장은 아름답지 않다. 전문화, 엘리트주의 때문이다. 모든 영역이 고도화의 늪에 빠져 소위 ‘나노급 연구’에 매진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가치를 규정하는 시대가 된 탓이다. 전문화의 부작용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것인데, 21세기를 지나오며 나무도 보다못해 잎속을 뜯어보고 잎맥속, 세포속을 들여다보는 수준이다. 다른 분야는 물론이고 이제는 같은 전공이라도 세부연구영역이 다르면 서로를 아예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래한 명문대학의 디스쿨이라는 커리큘럼이 꽤 유명세를 타고 있다. 디자인, 공학 분야의 교육자부터 경영, 마케팅, 인문학, 융합학문 관계자들까지 너도나도 들어보고, 찾는 공학·디자인 융합 혁신교육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필자도 수년전 방문하였는데 깜짝 놀랐다. 무언가 새로워서 놀란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의 행위주체가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공학이 디자인을 행위하는 것이었다. 사용자 관찰-문제점 분석-아이데이션-브레인스토밍-콘셉트도출-프로토타입 제작-실험-검증-보완 순서로 개발을 진행하는 것은 본래 디자인프로세스다. 일반적인 산업디자인스쿨과 100% 동일했다. 이처럼 디자인영역 본래의 것에 전혀 새롭거나 높은 수준의 것이 아님에도 너도나도 공학분야가 만든 디스쿨에 열광하는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필자가 찾은 답은 ‘무관심’이다. ‘융합’ ‘혁신’에 늘 목말라 있지만 실상은 유관분야에조차 무관심한 현상을 꼬집는 하나의 해프닝이 바로 ‘디스쿨신드롬’이 아닐까?
이탈리아북부 모데나에 있는 럭셔리스포츠카 제조사 마세라티 공장의 생산라인을 최근 다녀왔다. 여러 수작업과 로봇작업을 거쳐 조립된 인테리어를 담은 차체와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을 담은 파워트레인이 각각 별개의 라인으로부터 이동하여 하나의 라인으로 결합하는 공정이 있다. 결합 전까지 두 라인의 조립물은 각각 무언가 복잡하고 엉성한 기계덩어리로 보이다가 이 라인에서 만나 결합된 순간부터는 너무 근사한 한대의 자동차로 보이기 시작했다. ‘화룡점정’같은 결합이랄까. 마세라티 사람들은 이 결합의 아름다움을 프랑스 정찬에서 음식과 와인을 곁들이는 궁합에 빗대어 ‘마리아주’라 부른다고 했다. 단어의 의미를 정말 완벽하게 담은 환상적인 표현이다. 디자인과 공학, 예술과 공학이 바로 음식과 와인이다. 모든 과정마다, 모든 현상마다 서로에게 어울리는 음식 한접시와 와인 한잔이다. 훌륭한 마리아주는 음식을 책임지는 셰프의 독단으로 구성하는 것도 아니고, 와인을 책임지는 소믈리에에게만 주어진 권한도 아니다. 순서대로 나가는 음식 한접시마다 어떤 와인 한잔을 곁들일 때 서로의 풍미를 살려주며 어울리는지를 결정하고 구성하는 것은 음식과 와인 모두를 통섭한 셰프일수도 있고, 통섭한 소믈리에 일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음식과 와인 모두 잘 아는 누군가가 맡는 명예라는 점이다.
이 시대의 융합과 혁신은 통섭자를 요구하고 있다. 관계도가 높은 주변영역조차 무관심한 채 오로지 과학, 무조건 공학, 오로지 예술, 무조건 디자인만 외치는 고립된 엘리트주의, 나노급 전문가가 만든 시대는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디자인과 공학의 결합은 마리아주의 맛과 가치다. 차체이던 파워트레인이던, 음식 한접시이건 와인이건, 디자이너건 공학자건 상관없다. 디자인과 공학, 예술과 과학도 극히 작은 일부일 뿐 세상 모든 영역의 융합과 혁신은 통섭자의 몫이며 특권이다. 그리고 통섭을 이루는 방법은 당연히 둘 다 알도록 하는 것이다. 무관심을 걷고 연관의 끈을 묶는 것, 마리아주를 만끽하는 것이다.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8년 9월 21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디자인과 공학, 마리아주의 맛과 가치’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