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듐은 1991년 모토롤라가 주축이 돼 전세계 47개 주요 통신사가 총 52억불을 투자한 초대형 프로젝트이다. 인공위성으로 연결된 지구전역을 커버하는 이동통신시스템 개발이 목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SK텔레콤이 참여했다. 러시아, 미국, 중국에서 15개의 로켓을 구입해 지상의 기지국을 대신할 66개의 통신위성을 발사했다. 사업개시 7년 후인 98년에 첫 번째 통화가 이루어졌다. 이리듐은 위성과 직접 연결돼 일반 휴대폰 사용이 불가능한 태평양 한가운데라든지 사하라 사막이나 남극과 같은 극한지역에서도 통화가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듬해인 1999년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실패원인은 간단했다. 위성폰에 대한 수요가 충분치 않았다. 해외출장이 잦은 비즈니스맨을 주요 목표고객으로 했으나 이리듐을 개발하는 동안 모바일 통신도 급격히 발전, 이리듐이 출시되었을 때는 모바일 통신망이 닿지 않는 지역은 그리 많지 않았고 가격 또한 훨씬 저렴했다. 물론 오지탐험가나 대륙횡단 비행기와 원양어선의 수요는 있었지만 막대한 투자비용을 회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사례는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창업가들이 창업아이템을 구상하면 곧장 그것을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이면에는 만들기만 하면 팔릴 것이라는, 즉 개발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충분한 수요가 존재할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가정이 있다. 그 확인되지 않은 가정으로 많은 창업가들이 스타텁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인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 실패한다.
창업은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다. 그것은 만들고자 하는 제품·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 아니라 만들고자 하는 제품이 과연 만들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다. 요즘 세상에 만들지 못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만들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창업가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수요가 말해준다. 창업가는 감에 의한 수요확신이 아니라 시장이 원하는 바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제품개발전에 확보해 시장실패를 줄여야 한다. 최근에는 단순 서베이나 설문조사가 아닌 보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창업가들은 자신의 비전을 테스트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드롭박스(파일공유시스템)의 창업자 드류 휴스톤은 사용하기 매우 쉬운 파일공유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당시 다수의 제품들이 개발돼 있었지만 모두 사용절차가 복잡했다. 드류 휴스톤은 제품개발에 앞서 본인이 만들고자 하는 파일공유시스템을 과연 소비자들이 원할 것인가에 대한 검증을 하고자 했다. 공들여 소프트웨어를 다 개발했는데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동안 제품개발을 위해 들인 노력을 보상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이다 보니 말이나 문서로 본인이 개발하고자 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렇다고 시제품을 만들자니 완제품에 버금가는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대신 휴스톤은 제품을 설명하는 비디오를 만들었다. 작동하는 법을 보여주는 3분짜리 기술시연 동영상이었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목표고객인 컴퓨터매니아들이 즐겨보는 해커뉴스라는 웹페이지에 올렸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하루밤사이에 7만5000여명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싶다는 주문을 올렸다. 휴스톤은 감동했고 제품개발에 박차를 가해 13조원의 가치를 지닌 기업을 만들었다.
소프트웨어에만 이러한 실험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자포스라는 온라인신발가게 창업자 닉 스인먼도 드롭박스의 휴스턴과 똑같은 고민을 했다. 온라인 신발가게를 만들고자 무작정 웹페이지를 만들고, 물류창고를 짓고 유통회사와 협력관계를 구축했는데 정작 아무도 온라인으로 신발을 사려 하지 않는다면 그런 낭패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신발을 구매하려 하는지에 대한 작은 실험을 하기로 했다. 본인이 살고있는 지역의 주요 신발가게를 돌아다니며 신발가게 주인에게 신발사진을 찍게 해주면 본인이 그 사진을 온라인에 올린 후 누군가 그 신발을 사겠다고 하면 다시 돌아와 정가로 구입하겠다고 제안했다. 이후 간단한 웹페이지를 만들어 찍은 사진들을 올렸다. 이 웹페이지는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신발을 구매하고자 하는지 뿐만 아니라 온라인 고객에 대한 응대 및 반품관리, 입금확인에 대한 고객의 니즈 그리고 할인가에 대한 고객의 반응 등 사업에 필요한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자포스는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고 2009년 아마존에 12조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인수되었다. 우리는 지금 팔릴 제품·서비스를 만들고 있는가? 팔릴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믿음에만 의존한채 제품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점검해보자.
황윤경 UNIST 교수·기술창업교육센터장
<본 칼럼은 2018년 9월 28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창업을 위한 실험’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