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 업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서’라고 한다. 그럼 스타트 업은 왜 이런 제품을 만드는 것일까? 스타트 업은 부의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비즈니스이고 부의 창출은 고객으로부터 나온다는 자명한 사실을 몰라서일까? 스타트 업의 시장실패를 야기하는 대표적 원인으로는 (1)기술지향형 사고 (2)잘못된 문제인식을 들 수 있다. 지면관계상 본고에서는 첫번째만 다루기로 한다.
기술지향형 사고란 ‘성능이나 기술이 좋으면 제품은 무조건 팔린다’라는 믿음 하에 성능 개선이나 신기술 개발에만 매진하는 경향을 말한다. 제품을 출시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에 그토록 많은 자금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첨단기술기반의 사업일수록 이런 현상은 빈번히 발생한다. 구글의 안경형태의 컴퓨터인 구글 글래스나 아마존의 첫 스마트폰인 파이어폰을 생각해보라. 둘 다 혁신적인 제품임에는 틀림없으나 아무도 그 제품을 원하지 않았다.
국내 사례로는 엠피맨닷컴을 들 수 있다. 엠피맨닷컴은 애플의 iPod이 나오기 훨씬 전인 1997년에 세계 최초로 MP3플레이어를 개발한 국내 유망 스타트 업이었다. MP3 플레이어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덕에 국내외 투자사로부터 80여억원의 자금을 유치하면서 화려하게 출발했다. 당시 국내시장 점유율 1위, 세계시장 5위를 차지하면서, MP3플레이어 외에도 데이터플레이어, 클릭디스크 등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다수의 신제품을 선보였다. 그럼에도 불구 몇 년 지나지 않아 영업실적 악화로 도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업의 순조로운 출발이 독이었다. 원천기술 하나로 8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다보니 기업 내부에서는 오로지 기술개발만이 살길이라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기업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시장상황에 관계없이 신기술 신제품 개발에만 매진했다. 실제로 다양한 제품이 세계 최초로 개발되었지만 상당수가 시장에 출시되지도 못한 채 사장되거나 개발 후 수년이 지나 시장이 형성돼 실제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 기술개발에 대한 무모한 투자와 맹신은 지속되었고 자본금은 잠식되어갔다. 후발주자들이 디자인과 마케팅을 앞세워 치고 나올 때에도 전자제품의 경쟁력은 디자인이나 마케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사내의견에 밀려 변신의 기회를 놓쳤다. 또한 회사가 가장 의지했던 원천기술에 대한 로열티는 후발경쟁업체들의 특허무효소송 제기로 기업간 분쟁으로 이어졌고 장기간의 법적 소송은 비용 부담을 가중시켜 엠피맨닷컴의 자금난을 더욱 부추켜 결국 문을 닫았다.
역사적으로도 기술과 성능이 우수한 제품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쿼티자판(알파벳 자판의 맨 윗줄 왼쪽이 QWERTY라서 지은 이름)은 열등재임에도 시장을 장악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기술적 한계로 자판을 너무 빨리 치면 글쇠가 엉키거나 망가지는 것이 문제였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한 글자 내에 자주 등장하는 알파벳 모음(aeiou)을 가능한 서로 멀리 배치하여 타이핑 속도를 줄이고자 했다. 이후 쿼티자판은 수많은 타자기에 적용되어 많은 타이피스트들이 이 자판을 이용했다.
이후 타자기 제조기술이 발달해서 글쇠가 엉키지 않게 되자 주요 모음 5개와 자음 5개를 자판의 중앙에 배치해 타이핑 속도의 향상을 꾀하는 신 자판이 등장했다. 타이핑 속도는 2배 향상될 수 있으며 타이핑에 드는 피로감도 95%나 줄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소비자들은 여전히 쿼티자판을 선호했고 신 자판을 개발한 워싱턴대학의 드보락 교수는 죽을 때까지 소비자들의 무지를 통탄했다. 사실 문제는 쿼티자판의 타자 속도나 피로감이 아니었다. 신 자판으로 변경할 경우 소비자들이 다시 배우고 익혀야 할 불편함과 수고로움, 그것이 더 큰 문제였다.
의외로 엠피맨닷컴이나 드보락 교수와 같이 기술개발에는 전념하면서 판매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창업가가 많다. 시장실패에 대한 이들의 전형적인 반응은 고객은 비합리적이고 자사의 품질을 몰라주며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놈 촘스키(Noam Chomsky)가 말한가로등이 없는 길 건너편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는 반대편 가로등아래서 열쇠를 찾는 술취한 사람과 흡사하다. 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환하다는 이유로 가로등 아래를 헤매는 사람처럼 그들이 가진 시장(고객)에 대한 이해가 그들이 가진 기술적 지식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기술지식으로만 제품을 평가하고 거기서 답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행여 우리도 그런 건 아닌지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황윤경 유니스트 기술창업교육센터장 산학협력중점교수
<본 칼럼은 2018년 12월 3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기술창업의 함정’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