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이제 진부하다. 그런데 이 식상해보이는 주제가 신선하고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을 때가 있었다. EBS에서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엘렌 랭어 교수의 ‘강아지 장난감 실험’을 재현했던 현장에서였다. 펜과, 텀블러, 카메라 부품, 그리고 (고무로 만들어서 지우개로도 쓸 수 있는) 강아지 장난감을 두 팀의 대학생들에게 보여주고 가격을 추정해보도록 했다. 이 때 한 팀의 학생들에게는 각각의 아이템을 단정적 언어로, 예를 들면, “강아지 장난감이다”라고 설명하고 다른 팀 학생들에게는 “강아지 장난감일 수도 있다”라고 여지를 둬 설명했다. 그런 다음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주고 연필로 답을 적도록 한 후에 갑자기 지시가 잘못됐다면서 지우개가 필요한 상황을 연출했다.
실험의 핵심은 과연 참가자들이 강아지 장난감을 지우개로 활용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실험 전에 ‘설마 고무로 돼 있는 장난감을 지우개로 활용할 생각을 못하는 학생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여지를 둔 설명을 들었던 후자 그룹의 12명 중에서 절반인 6명이 강아지 장난감을 활용해서 자신들의 필기를 지웠다면, 단정적 설명을 들었던 전자 팀 12명 중에서는 단 한명만이 강아지 장난감을 지우개로 활용했던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절대적인 하나의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더 확장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과 함께 정답 찾기 중심의 교육을 받은 한국 학생들이 창의력과 유연한 사고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이 실험은 필자가 교육에 대해 보다 깊이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교육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바꿀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평가 제도의 획기적인 변화 없이 교육 방식만을 바꾸는 것은 효과가 적으며, 당장 입시와 취업이 눈앞에 다가오는 상황에서 기존의 교육 및 학습 방식을 갑자기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교육 문제에 대한 여러가지 처방들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 및 평가 시스템 개선이나 인식의 전환, 또는 사회 구조의 변화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들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이 어려운 문제를 다 함께 고민하면서 차근차근 풀어가야 한다.
교육자들뿐 아니라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까지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방식의 교육과 학습을 하나씩 실천해 보는 것이 현실적인 출발점일 수 있다. 교사들은 교육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수업에서 학생들의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새로운 방법들을 개발해 시도하고, 학생들은 미래사회에서 필요한 다양한 역량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주도적으로 모색하게 되면 교육 현장의 분위기는 점차 바뀌게 될 것이다. 이미 교육 과정을 마치고 사회에서 활동중인 성인들도 지속적으로 독서와 글쓰기 등을 통한 사고력 증진 훈련을 하게 되면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에의 적응이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부모들 또한 질문을 하고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주는 노력을 하다 보면 부모의 제한된 경험과 지식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만들면서 멋지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날 대학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세 유럽의 대학은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자유로워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르치는 기초 과목들을 ‘자유’ 학문(Liberal Arts)라고 불렀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목표 또한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속박하고 있는 기존의 관습이나 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고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뿐 아니라 기존 방식이나 원리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기존 체계나 틀을 벗어난 새로운 관점과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해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주목해야 할 중요한 교육의 목표가 아닐까? 결국 이러한 사고력을 가지고 변화를 포용하며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질 때 비로소 우리나라 교육의 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이주영 UNIST 기초과정부 교수
<본 칼럼은 2019년 3월 4일 울산매일신문 18면 ‘[매일시론] ‘자유’를 위한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