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울산과기대가 울산과학기술원(유니스트)으로 전환되면서 초대 총장 선출이 있었다. 유니스트 교수, 직원, 학생 중 어느 누구도 총장 후보자들이 누구였는지, 총장이 어떻게 선출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정관에 따르면 총장은 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에서 추천된 후보자를 이사회가 선임하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승인하는데, 총추위는 물론 총추위 규정 자체도 없었다. 귀신이 유니스트 총장을 뽑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곧 유니스트는 과학기술원(과기원) 전환 이후 두 번째 총장을 뽑아야 한다. 2018년 5월 유니스트 교수, 직원, 학생은 다른 과기원과 대학의 총장 선출 규정을 면밀히 조사하고 연구한 후, 모든 학내 구성원이 참여하는 총추위 구성안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비공식 면담에서 과기정통부는 다른 과기원, 즉 한국과기원(카이스트), 광주과기원(지스트), 대구경북과기원(디지스트)의 규정처럼 “학생과 직원은 총추위에 참여할 수 없으며, 교수 참여도 최소한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과기원은 공공기관으로서 정부 예산을 지원받으니 총장은 기관장에 해당하며, 기관장인 총장을 정부가 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유니스트에는 국내외 석학들을 포함, 유니스트의 발전을 고민하는 많은 교수들이 있다. 그러나 과기정통부 공무원들은 본인들이 유니스트 발전에 대해 더 탁월한 혜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 연구의 자유는 어디 있냐고 묻고 싶다.
카이스트 등 다른 과기원에서도 정부의 일방적 총장 선출은 많은 폐해를 낳았다. 2018년 디지스트 총장은 내부고발로 장기간의 과기정통부 감사를 받고 결국 사임했다. 그는 정부가 임명한 이사와 이사장이 추천한 인사, 그리고 과기정통부 관료로 구성된 총추위에서 총장 후보자가 된 후 이사회가 선임하고 과기정통부 장관이 승인한 총장이었다. 현 카이스트 총장도 2017년 초에 유사한 제도에 따라 선출되었으며, 소위 ‘친박’이라서 총장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그 역시 디지스트 총장 재직 시의 문제로 과기정통부의 감사를 받는 등 사임 압박을 받았다. 이런 식이라면 현 총장 선출 제도하에서 과기원 총장들은 본인을 선택한 정권의 눈치만 보게 된다. 결국 구성원의 ‘참여’와 지지에 기반하지 않은 총장은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의 혁신과 발전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이다. 박근혜 정부의 소통 부재에 절망하고 분노한 국민의 목소리가 탄생에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과기원의 총장 선출 건만 놓고 보면 과연 현 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작금의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인 소통과 민주적 참여를 요구한다.
과기원은 국민의 자산이며, 학생은 미래의 인재로, 신임 교수는 석학으로, 오늘의 스타트업은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 열매는 국민의 몫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과기원도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총추위를 구성하여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발전과 인재 양성을 이끌 총장을 선출해야 한다. 이것이 유니스트 초대 총장을 선출했던 귀신을 다시 찾아가 훌륭한 총장을 보내달라고 매달리는 것보다 이성적이고 현명한 길임이 분명하다.
나명수 | 유니스트 교수·총추위 규정 제정위원장
<본 칼럼은 2019년 3월 4일 경향신문 29면 ‘[기고]과기원 총장 선출 방식 바꿔야’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