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중국이 다시 세계의 중심에 있다. 등소평의 개방정책 이후 대약진을 거듭한 결과, 현재 중국을 제외하고는 세계를 논하기 힘들다. 20세기는 1991년에 이미 끝났고, 21세기는 1979년에 벌써 시작됐다고 하는데, 1991년은 구소련의 붕괴를 말하고, 1979년은 중국의 개방이 시작된 해를 말한다.
1979년을 기점으로 13억의 거대한 인구가 지난 36년 간 엄청난 속도로 압축적인 근대화를 겪었다. 한국이 이룩한 전후 30년 간의 경이로운 속도의 경제성장이 그 20배 이상의 인구규모에서 진행된 것이다. 이는 미국의 폭발적인 근대화, 즉 남북전쟁 이후 1차 대전을 거치면서 이뤄진 미국경제의 발전과 비교되지만, 그 규모와 속도에 있어서 중국의 발전이 압도적이다. 그야말로 중국의 경제발전 규모와 속도는 세계사에서 유래 없던 현상이다. 현재의 중국은 제조업 면에서 세계의 공장일 뿐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정보통신기술에서도 미국에 버금가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고, 군사-우주 분야에서도 빠르게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중국의 성장은 정치-역사적 측면에서도 잘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개방형 자본주의를 취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독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 방식은 기존의 서구식 발전과는 상당히 다르고 독특하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성장에 대해서 경외하면서도 동시에 미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예컨대, 공산당 독재, 소수민족과의 갈등, 그리고 민주주의의 부재가 중국의 미래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런데, 중국을 전적으로 서구식 발전의 틀과 시각에서 이해할 때 간과하기 쉬운 지점이 바로 중국의 역사적 독특성이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의 저자 마틴 자크(Martin Jacques)에 따르면, 그 독특성의 핵심은 중국이 동일한 문명권을 바탕으로 지난 3000년 간 정치-경제-문화 공동체를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000년 간의 중국 역사를 보면, 분열과 통합의 주기적 사이클을 거치면서도 문명이 국가형태로 유지됐다.
역사적으로 유럽문명과 비교될 수 있겠으나, 유럽은 다수의 주권국가로 구분돼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다르다. 미국의 경우는 비교적 큰 규모의 연방국가이지만, 그 역사가 일천하다. 중국문명은 몽골의 팽창(원나라)이나 만주족의 팽창(청나라) 속에서도 유지됐고 오히려 이러한 주변의 민족들을 흡수-포섭했다. 이러한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난 200여년은 중국이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기로 진입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모택동이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의 처절한 실패와 그로인해 대재앙을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바로 그가 중국문명의 통합을 이끌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은 서구적인 의미의 국민국가라기 보다는 ‘문명국가’, 즉 문명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문명 규모의 국가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 현재 중국의 성장은 동부해안 중심에서 내륙으로 확대가 확연하다. 상하이와 광저우 중심의 성장이 양자강을 타고 충칭과 청두의 내륙으로 확대되었으며, 옛 실크로드를 거쳐 유라시아 대륙으로 장대하게 연결되고 있다.
지난해 말 이신어우 화물열차가 중국동부에서 내륙을 관통해 신장자치구를 지나 카자흐스탄,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가로지르고 유럽의 독일, 스페인에 도착했다. 이와 더불어 중앙아시아, 중동지역과의 에너지 거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넓게 보면, 서쪽으로는 유럽-중국의 경제-정치적 관계가 더욱 진전되고 있으며, 북쪽으로 중국-러시아의 새로운 협력관계가 정립되고, 남쪽으로는 중국의 인도 및 동남아로의 진출이 활발하고, 중국-아프리카의 관계는 자원외교에서 출발하여 점점 더 밀착되고 있다. 바야흐로 신 실크로드를 통한 중국의 유라시아 및 아프리카 진출이 확연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중국이 20세기 세계사의 주역 미국과 관계를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할 지가 21세기 세계사의 핵심 관전 포인트이다. 미국과 중국 관계는 우리나라의 국운에 영향력을 미치는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전개될 21세기 중국문명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본다면, 이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역사는 고조선 이래로 지난 2,000여년 간 중국문명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규정돼 왔다. 중국문명의 변방에 위치해 있으면서 그 문명과의 지속적인 문화적 상호작용이 우리 역사에 시시각각 관철되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변방의식, 즉 문명의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 있어다는 사실에 위축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주변부의 역할에 더욱 주목 할 필요가 있다. 기왕의 세계사를 보면, 창조와 혁신의 기운은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중심부가 중심의 패러다임에 몰입되어있을 때, 그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변방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새로이 번성하는 중국문명이 선사하는 가능성의 기회 앞에 서있다.
김영춘 UNIST 교수·경영학부
<본 칼럼은 2015년 6월 3일 울산매일 15면에 ‘중국 이해하기’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