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가 시작됐습니다. 처음 집을 떠나온 신입생의 어려움은 쉽게 상상하실 수 있습니다. 어제까지 고등학생이었던 자녀를 걱정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금방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신입생 시절 잘 보냈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를 찾는 숫자를 환산하면 대학원생의 빈도가 학부생보다 더 높습니다. ‘대학 잘 보내서 졸업만 시키면 알아서 잘 하겠지’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까지 잘 졸업한 학생도 다음 단계에서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 문제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집에서 방을 혼자 쓰다 공동생활을 하며 발생한 불면증도 있습니다. 저희는 환경 개선 뿐 아니라 수면 습관까지 다룹니다. 간단한 수술 후 학기를 시작하려던 학생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찾아옵니다. 질병휴학의 행정 절차 뿐 아니라 동기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좌절과 불안감을 견딜 수 있도록, 학생과 부모님이 함께 이겨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안내합니다.
한국학생에게는 문제없는 법정감염병을 위한 조치도 있습니다. 시설 소독과 접촉자 관리는 보건소에서 지원하지만, 한국어 소통이 어려운 외국학생을 밤에 입원시키고 그 과정에서 겪은 혼란을 안심시키는 것은 저희의 몫입니다. 학생 사이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의 피해자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가해자 또한 우리 학생이기에 혹시나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이 다양한 일들이 모두 봄 개강 후 발생한 사건들입니다.
요즘 청년들이 너무 나약하다고 말하실 수도 있습니다. 원래 정신심리에서 가장 흔한 문제인 우울과 불안은 20대에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사회 변화도 한 몫을 합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밀레니얼 세대 대학생들이 이전 세대보다 더 심한 정신적 문제를 겪는다고 보고합니다. 각국은 그들의 청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미국은 대학생 1만명당 정신건강 전문가 20명을 둘 것을 권고합니다. MIT는 1만명을 위해 정신과전문의 10명을 포함한 30명의 전문가를 둡니다. 매년 전체 학생의 21%가 도움을 받습니다.
우리사회는 변화가 더 빠릅니다. 고령화, 출산율 등의 지표로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러나 우리 청년을 위한 국가의 역할은 부족합니다. 작년 여름 보험공단은 충분한 면담에 대해 개인부담을 줄이고 병의원이 더 큰 이득을 얻도록 수가를 조정했습니다. 단순 약물투약이 아닌 충분한 상담을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입니다. 특히 청년들에게는 충분한 상담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캠퍼스부속의원은 대기업과 동일한 취급을 받아 이 지원을 받지 못합니다. 부모님이 낸 보험료로 자녀들이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이 상황에서 대학은 교육과 연구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을 나눠 쓰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합니다.
정신과의사가 캠퍼스에서 진료를 하는 곳은 서울대, 카이스트, 유니스트가 전부입니다.
제가 부임한 2016년 이전에는 상담사 1명이 심리상담부터 성희롱과 인권의 문제까지 모두 담당해야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의사, 임상심리, 상담심리, 간호로 구성된 조직을 꾸렸습니다. 작년 초 인권센터도 독립기관이 됐습니다. 과기원 교수로서 제게 진료에 주어진 시간을 환산하면 주당 1시간뿐입니다. 그러나 아프다고 찾아온 학생들을 돌려보낼 수 없기에, 초기 단계만 진료하면서 주당 20시간을 써야 했습니다.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3월부터 한 명의 의사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여건에도 흔쾌히 동참해준 이유는 그가 청년들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유치원 때를 떠올려보세요. 우리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하셨을 겁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잘 묻는 것입니다. ‘잘 해라’ 말한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잘 하려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자녀 스스로가 더 강하거든요. 대신 잘 물어봐주세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가끔씩만 물어주세요. 혹시 자녀가 힘들어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전문가를 찾아주세요. 열이 나는 아이를 안고 응급실에 달려가셨듯이 말입니다.
정두영 UNIST 디자인및인간공학부 교수·헬스케어센터 센터장
<본 칼럼은 2019년 3월 14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대학 진료실에서, 학부모님께’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