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원 진료실에서 자주 듣게 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생하고 참아내면 그 다음에는 무언가 쉽게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그 중 세 가지 질문에 답을 해보겠습니다.
“엄마가 지금만 참고 공부하면 다 된다고 했어요. 시험만 잘 보면 편하고 행복하게 산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아요.”
엄마한테 속은 겁니다. 만약 엄마도 성적이 좋지 않았으면 똑같이 속은 채로 사셨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성적이 좋았던 엄마도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저렇게 말씀하셨을 수 있죠. 사실 엄마가 아니라 선생님이, 어른들이, 사회가 그렇게 얘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 앞에서 그렇게 얘기했던 엄마도 친구들 모임에서 학창시절에 시험을 잘 봤던 친구가 잘 풀리지 않았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반대로 학교성적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돈을 많이 벌거나 출세한 이야기들도 많이 알고 계시죠. 출세까지 아니더라도 충분히 잘 살고 있는 친구들의 얘기는 물론이고요.
심지어 좋은 대학만 가면 예쁜 여학생, 멋진 남학생이 줄을 선다는 거짓말도 있죠. 여러분도 커가면서 조금씩 느꼈을 겁니다. 시험성적이 무언가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요. 어쩌면 스스로 지금의 고통을 잘 참아내기 위해 그 거짓말을 믿으려고 했을지 모릅니다.
입학시험의 점수가 좋다는 것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시작하기 위한 출발선에 설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축구유망주의 입단 테스트 성적이 그가 훌륭한 선수될지 보장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네 그 고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원래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이 잘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하고 여기서 고통을 받아요. 앞의 질문과도 연결되는 부분이죠. 시험 점수가 높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경험하기 전에는 잘 모르죠. 그래서 젊을 때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정해진 일만 적당히 하고 여유시간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얘기합니다. 자신에게 잘 맞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험적이고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돈도 잘 벌고, 안전하고, 여유 많고, 힘들지 않고, 존경받는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몇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과 가장 싫어하는 것이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기준조차 처음에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대학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물론 다른 시기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학, 인턴십 등의 기회가 있으면서 배우자, 육아 등의 부담이 가장 적은, 모험하기 좋은 시기가 이 때입니다. 사춘기 때 열심히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면 이제 사회에서 그것들을 부딪혀볼 수 있는 첫 시기입니다.
“뭔가 열심히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잘 하고 싶다. 뛰어나고 싶다’라는 욕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징조입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상황보다 더 풀어내기 좋습니다.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라는 것은 적어도 바로 앞의 질문에서 ‘어떻게’ 부분은 정한 것이니까요.
과기원 학생들은 무학과 1학년 때 더 많은 경험을 하면 확실하게 자신의 길이 보일 거라고 오해하곤 합니다. 1년이 지나도 잘 모르겠다며 불안하다는 얘기를 하죠. 이것도 20대에는 당연히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사실 그 정도가 줄어들 뿐 나이가 들어도 이 고민은 계속됩니다. 지금의 저도 마찬가지죠.
사람들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이 나한테 더 좋은 것이었으면 어쩌나 불안해합니다. 제 대답은 100% 확실한 답을 기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1%라도 더 끌리는 것이 있으면 ‘열심히’ 해보고 그 다음에 판단해도 됩니다. 완벽한 결정을 기다리는 것은 마음을 더 불안하게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좋아 보이는 것으로 시작해보세요. 그리고 예상과 다르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그 경험도 충분히 훌륭한 결과입니다.
정두영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 헬스케어센터장
<본 칼럼은 2019년 5월 16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행복은 성적순, 엄마의 거짓말’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