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영화, SF 영화 속 외계인은 대부분 무언가 연체동물, 특히 문어나 오징어, 낙지 형상과 인간의 모습을 합성한 느낌이 든다. 우주전쟁, 에일리언 시리즈 등 지구와 우리 삶을 위협하는 내용의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두려워하고 낯설거나 거북한 생물의 외형을 조합한 결과물이다. 심해어 느낌도 드는 이 외계인들은 분명히 낯설지만 조합한 탓에 어딘가 낯이 익다. 설화에 나오는 신, 악마의 모습을 보면 각자 해당 문화권의 복식을 갖추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등장 인물 묘사나 예수님, 부처님, 각종 귀신과 악마,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권 토속신앙 속 등장인물의 모습은 인류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큰 역할자지만 저마다 해당 문화권의 옷과 말 쓰임새, 행태를 보인다.
재미있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시대배경을 반영하는 동시에 시대경험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거나 등장시킨 영화는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경험의 소산이다. 창의성 발현은, 제한된 경험 통찰, 지식을 총동원한 결과물이다. 한국을 와본 적 없는 유럽사람이 꾸는 꿈에는 절대로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이 등장할 수 없다.
인류 4대 문명발상지는 경험데이터의 집합체이며 경험교류의 융합이 활발했던 곳이었다. 이곳에서부터 인류는 비로소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직접 만들고 문제를 풀어야 했던 원시시대, 선사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교환 가치의 등가성에 기반한 물물교환 때문이다. 이 물물교환은 전문영역의 탄생과 발전을 일으켰다. 각자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여 그 산출물로 다른 필요한 것을 얻으면 더 효율적이고 이익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급속한 영역분화가 시작되었다. 이는 물건제작부터 작물재배 노하우, 지역기후, 이동경로정보까지, 교환가치를 지닌 각 영역 깊이를 다루는 전문가의 탄생이기도 하다.
현대문명은 이 전문가 활동이 고도화된 영역 조합이다. 필자는 산업디자인 전공이다. 형상을 다루는 데 필요한 조형 재료, 데이터를 쌓기 위해 경험 극대화가 필요하다. 늘 잡지, 신문, 방송 등 매체를 통해 트렌드와 이슈를 파악해야 하고, 세계 각국의 모터쇼와 교통 인프라 경험을 통해 모빌리티에 관한 디자인 데이터를 만들고 쌓는다. 다양한 영역의 전시회 관람과 도시나 지역문화 경험은 디자인 조형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는 최고의 소재다. 일반인이나 타 전문가가 볼 때 그냥 일상구경이나 이동으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디자인 전문가에게는 귀중한 사용자 경험이고 디자인 대상 탐구와 데이터 습득이다. 접변영역인 영화나 시각예술 분야도 유사하거나 동일하다.
전문영역의 소산은 제도와 문화를 통해 수준을 드러내게 되어있다. 각자의 전문성 발휘는 곧 고도화와 디테일을 만들고, 이를 존중하는 자세는 구성원의 수준을 규명한다. 다시 말해 디테일의 가치를 이해할 줄 아는가와 모르는가가 해당 조직발전의 자격이며 동시에 전문가의 자격이다. 각 분야 전문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곧 사회, 문화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대한민국의 문제점 하나를 짚는다. 이름하여 *내가 다 안다.* 전문 영역이 세분화 된 현대사회에서 내가 최고인 것은 나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지 모든 영역의 전문가란 존재할 수 없다. 디자인나부랭이인 필자가 어떻게 이차전지 효율성을 높이고 그래핀구조를 개선하며 신물질을 발명하고 신약을 연구하겠는가? 관련 분야에 무슨 평가를 할 수 있겠나? 어불성설이다. 마찬가지로 명함부터 전단지, 간판이나 플랭카드까지 색상배치, 폰트의 크기와 시각물 효과, 경관, 공간의 구성, 바늘부터 우주선까지 모든 산업제품의 형태와 구조 디자인에 관한 것을 비전문가인 담당자나 결정권자가 자신의 취향대로 함부로 정해도 되는 것일까?
현대사회, 현대문명에서는 사소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그 어떤 분야도 누군가의 전문영역이다. 결과는 큰 차이를 낳는다.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유럽 선진국의 자연, 도시 풍광과 시스템, 높은 수준의 제품과 자동차, 배, 비행기 디자인, 품질, 음식과 커피, 와인 정하는 것 까지도 철저히 정해진 전문분야와 전문가 활동의 결과물이다. 제발 무엇이든 함부로 결정하지 말자. 당신의 비전문성과 타 분야에 대한 인격 수준을 동시에 드러내는 결정이니 까. 딱 아는 만큼 보인다.
내가 다 알고 내가 다 책임지고 내 결정이 옳다는 것은 무례고 무식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처리해야만 생존이 가능했던 자급자족시대의 원시성은 이제 그만 보자. 내가 모든 것을 아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성과 전문가가 필요하고 그래서 나도 존재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9년 5월 28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아는만큼 보인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