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만 잘 하는 애들은 역경을 견딜 줄 몰라서 처음 위기를 겪으면 회복하지 못하더라. 좀 방황도 해본 애들이 끝까지 잘 가더라.’ 중고등학생 시절 나이 많은 선생님들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입니다. 오랜 기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관찰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시련을 이겨내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은 긴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어려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불운한 환경의 아이들은 이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많은 아이가 단지 자신이 두 발로 설 수 있다는 것에, 간단한 단어를 말하는 것에 부모의 애정이 어린 칭찬을 듣고 자랍니다. ‘식당에서 얌전히 앉기’ 같은 예절을 배우느라 갑갑함을 느끼며 가벼운 좌절을 겪지만 (ADHD와 같은 문제가 없다면) 대부분 나름대로 적응해 나갑니다.
그런데 학교 교육이 시작되고 점수가 매겨지면 큰 변화를 겪습니다. 이제까지 부모님의 가장 훌륭한 아이였던 왕자님, 공주님은 이제 없습니다. 부모님께 성적으로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같은 반에서 선생님의 관심과 애정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물론 뛰어난 외모나 예체능 특기 등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도 하지만, 대개 성적이 학생의 자존감에 가장 큰 영향을 줍니다. 대학 입시라는 큰 장벽을 넘어 명문대에 들어와도 위태로움은 지속됩니다. 선행학습을 통해 관리를 받아온 학생이라면 스스로 수강신청을 하고 과제와 발표를 하는 것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유니스트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첫 좌절을 겪는 시기와 관련됩니다. 어떤 학생은 입학도 하기 전에 실패감을 호소합니다. 원하는 대학 대신 차선으로 이 학교에 온 것으로 인해 인생 계획이 모두 틀어졌다고 말합니다. 학기가 시작되면 많은 학생이 평균 이상의 성적을 얻는 것이 이전만큼 쉽지 않다는 점에 좌절합니다. 원하는 동아리에 들지 못하거나 인턴십 탈락 통보를 받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훌륭한 학점으로 학부를 마친 학생이 대학원 진학 후 연구실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교과서를 읽고 완성된 지식을 학습하는 것과 다른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학생 때와 다른 사회인으로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성적이라는 기준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던 학생들은 ‘이 무리에서 우수한 학생’이라는 느낌을 잃으면서 성공과 멀어진다는 불안을 느낍니다. 고등학교까지 우등생들은 계속 상위권을 유지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경쟁에서 상위권을 유지해야 하며 미끄러지는 순간 되돌릴 수 없다는 불안을 느낍니다. 이 불안이 놀고 싶고 쉬고 싶은 마음을 억제해서 성적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방식으로는 열정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실패에도 지치지 않는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연구는 기존의 지식을 잘 흡수했는지 확인하는 지필고사와 달리 기존에 밝혀지지 않은 것을 찾아가는 모험이기 때문에 실패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요즘 세대의 대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스탠포드는 성공한 동문 선배가 실패 기록이 가득한 성적표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매년 배포하는 행사를 합니다. 하버드는 거절당한 경험을 소개하는 행사를 하고, 프린스턴에서는 실패와 고생을 당당히 말하는 수업을 한다고 합니다.
젊은 여교수님이 제게 나눠주신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학생들에게 술자리에서 본인이 시험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놀라워하면서 안도했다고 합니다. 명문 학교만을 다니고 외국에서의 성공적인 연구결과로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된 여성은 한 번도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기에 그 위치에 갔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모양입니다. 저도 제 이야기를 진료실에서 할 때가 있습니다. 생물학 유학에 실패하고 바이오와 IT회사를 다닌 이야기입니다. 스물여섯까지 의사를 직업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제가 과기원 정신과의사가 된 이야기를 해줍니다.
인생은 목표를 향해 흐트러짐 없이 효율적으로 직진해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실패하더라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아가고, 실패를 통해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정두영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 헬스케어센터장
<본 칼럼은 2019년 6월 18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우등생이 겪는 첫 실패의 아픔’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