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 중의 한 명인 한나 아렌트는 독일 나치 정권의 수 백 만 유대인 대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특별히 사악한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평범한’ 아이히만이 그토록 참혹한 악을 저지르게 되었을까? 한나 아렌트는 이를 비판적으로 사고 능력의 부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악이나 폭력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고찰인 이 ‘악의 평범성’ 테제는 한편으로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역설하고 있다. 필자도 비판적 사고에 관해서 지난번 시론에서 소개한 바 있는데 그에 대해 한 학생이 이메일을 통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학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글을 읽고 생각해보고 질문까지 보낸 이 학생은 사실 비판적 사고를 잘 하는 학생이다. 다만 비판적 사고에 대해 오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 학생의 질문이 바로 그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시론에서는 그러한 오해를 풀기 위해 비판적 사고를 위한 ‘변명’을 해보려고 한다.
이메일을 보낸 학생 질문의 핵심이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비판적 사고에 대해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내용 중의 하나가 비판적 사고의 ‘객관성’이다. 비판적 사고에 대한 정의 중 하나가 ‘어떤 정보나 주장에 대해 판단을 하기 위해 관련된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객관적’이라는 단어가 오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물론 어떤 사안이나 주장에 대해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하고 그 근거는 개인의 자의적이고 편협한 생각이 아니라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안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자신의 주관을 배재한 채 ‘객관적인 정답’을 찾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비판적 사고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다. 오히려 이는 비판적 사고가 극복하고 지양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평가와 판단은 당연히 개인의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만, 사안의 진위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이나 자신의 판단과 주장의 바탕이 되는 근거들을 검증하는 과정에 ‘객관성’이 개입된다. 이렇게 볼 때 비판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주관적 관점과 그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가 적절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비판적 사고에 관한 또 다른 오해는 그 활용에 관한 것이다. 비판적 사고라고 하면 토론이나 논쟁과 같은 특정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넓게 보면 우리가 배운 내용을 검토하고 자신의 지식으로 소화하는 학습 과정이나 기존의 지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연구에서, 또는 상황에 맞게 대응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업무에서도 비판적 사고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할 때뿐 아니라 일상에서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교제하는 가운데서도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잘하든 못하든 비판적 사고를 하고 있다. 따라서 비판적 사고의 부족은 우리의 개인적 삶과 사회적 관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상대의 생각이나 의견을 검증 없이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그럴듯한 선동과 설득에 쉽게 넘어가거나 광고에 솔깃해 충동구매를 하기도 한다. 교사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받아 적고 잘 외우지만 정작 본인의 의견 표현이나 질문은 잘 못한다. 지시 받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본인의 아이디어를 내는 데는 소극적인 사람 또한 비판적 사고력이 부족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반대로 자신의 관점과 주관이 너무 확고해서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확신이 강해서 자신의 생각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주장이나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좁은 생각의 틀 안에 갇히고 그 틀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수정, 보완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경직된 사고로 인해 타인과의 교류와 소통 또한 어려워진다.
한편 비판적 사고의 활용은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와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건설적인 논의와 토론이 활발해져야 한다. 정치가의 선동을 잘 판별하지 못해 쉽게 넘어가거나 자신이나 진영의 논리에 매몰되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 선동 정치나 혐오 정치가 득세하기 쉽고 정치는 후퇴한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진보, 보수 세력으로 나뉘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원인 중의 하나도 비판적 사고의 부족이다. 국민과 국가가 아닌 자신과 자기 세력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인들도 문제지만 이들의 주장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표를 주는 국민들 또한 구태정치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비판적 사고력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의 현실도 암울하다. 취업이 어려워져 학점과 스펙 쌓기에 집중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문제는 세상이 점점 더 지식이나 스펙만 가지고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작 학점과 스펙으로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필요한 역량들을 갖추지 못한 채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제대로 무장하지 않고 전장에 나가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교육을 변화시켜야 하지만 변화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필자를 포함한 사회인들까지도 당장 새로운 세상에 필요한 핵심 역량 중의 하나인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기 시작해야 한다. 다양한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해 보는 연습을 해보자. 내가 지지하는 정치가나 사상가의 논리를 무조건 따라가지 말고 문제가 없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사소한 일이라도 본인만의 관점과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판단을 해보자.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 뿐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자꾸 질문을 던져보는 습관을 길러보자. 당장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생활에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사람들과의 교류와 소통의 재미도 느낄 것이며 무엇보다 자신만의 관점과 적절한 근거를 가지고 사고하고 판단하는 당신은 점점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자신만의 매력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이주영 UNIST 기초과정부 교수
<본 칼럼은 2019년 7월 12일 울산매일신문 19면 ‘[매일시론] 비판적 사고를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