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배터리 기업인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이 두 그룹의 주력 미래 먹거리인 배터리를 두고 맞붙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상대방이 각각 자신들의 영업비밀과 특허를 침해했다며 이를 미국 ITC와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이번 소송전으로 한국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더욱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을 기반으로 무섭게 성장한 CATL, BYD 등 중국 업체들은 3년간 중국 정부 보조금 지급을 독식하다시피 하며 실로 ‘대륙의 배터리 굴기’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작년 7월 글로벌 1위로 부상한 CATL은 막강한 현금력과 시장장악력으로 2위 일본 파나소닉과의 격차도 벌려가고 있다. 매년 40~50% 성장하고 있는 배터리 시장에서 무려 10배에 이르는 350% 이상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5월 기준으로 글로벌 점유율 톱10에 총 6개의 중국 업체가 이름을 올렸으며 이들 업체의 점유율을 모두 합하면 약 50%에 육박한다.
최근에는 중국에 이어 유럽에서도 한ㆍ중ㆍ일 배터리 집중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주도로 EU(유럽연합)가 나서서 유럽 배터리 생산 컨소시엄을 벌써 2차로 준비 중에 있고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최대 배터리 고객사인 세계 완성차 1위 업체인 폭스바겐은 스웨덴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와 합작사를 설립, 지분 50%를 출자해 전기차용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업체들이 진흙탕 싸움을 하는 사이에 해외 업체들만 반사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여기저기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유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기업 중 어느 한쪽이 설사 압승을 거둔다 해도 한쪽이 모든 전리품을 가져 갈 수 없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이미 2021년부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2024년부터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심각한 공급 부족이 예상된다. 이런 산업을 두고 국내 업체들이 소송에 얽매이면 추가 수주ㆍ투자 및 연구개발 지연 등 기회 손실이 클 것이 뻔하다.
이번 소송은 결국 한정된 배터리 인력을 두고 싸우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국내 배터리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관련 소재ㆍ부품기업 등 인프라도 부족한 현실이다. LG화학이 최초에 자사 인력 유출을 빌미로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한 것만 봐도 배터리 전문 인력 확보와 육성이 배터리사업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최근 일본과의 무역분쟁으로 배터리 소재도 화이트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면서 배터리 업체는 소재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배터리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평하지만 실제 주요 원료에서는 일본 비중이 상당하다. 심지어 몇 개의 핵심부품은 전량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허약한 배터리 생태계 체력과 전문 인력 부족 상황에서 아직 이익도 제대로 못 내고 있는 회사들이 미국에서 소송비로 수천억 원의 비용을 써 가며 감정 싸움을 하는 것은 배터리산업에 있어 큰 손실이다. 소송에 매진하는 사이 두 회사가 잃어버리는 기회손실까지 생각하면 천문학적인 수준일 것이다.
LG화학은 1년 넘게 ESS 화재로 큰 고생을 한 만큼 현재 기술에 안주하지 말고 배터리 안전성을 높여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또 SK이노베이션은 후발 업체인 만큼 R&D 집중과 빠른 시장 점유율 확대에 사운을 걸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반도체 코리아를 넘는 배터리 코리아라는 국민적 요구를 위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양사가 지불해야 할 소송비의 일부만 활용해도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중소 소재업체들의 성장을 돕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완성차 업체들까지 배터리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현실에서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진흙탕 싸움은 그야말로 어부 앞에서 싸우는 생선에 불과하다. 어부지리 내전을 멈춰라.
조재필 | UNIST 교수
<본 칼럼은 2019년 9월 16일 한국일보 29면 ‘[기고]내전으로 몰락하는 한국 배터리 산업’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