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은 일이 있다. 새벽 3시께 도착한 응급실 입구는 방호복 차림의 의료진이 메르스 의심증상자 판별을 위해 몇 가지 질의응답과 체온측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신뢰의 방역체계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건강에 관한 질문과 대답을 거친 뒤 체온을 측정할 때, 깜짝 놀랐다. 귀에 삽입하여 온도를 재는 체온계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별다른 소독없이 앞 사람에게 사용한 것을 그대로 귀에 삽입하여 측정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감염자의 타액이 손가락 접촉이나 귓속말에 의해 귀에 묻었고, 그 사람의 귀에 썼던 체온계를 그대로 나한테 쓴다면 큰일 아닌가?’ 덜컥 겁이 났지만 본인의 의료지식이 미천한 기우겠거니 하며 넘어갔다. 그래도 지금껏 불안한 마음은 한쪽 구석에서 가시지 않는다. 울산역 대합실 나들목에는 메르스 의심증상자 감지를 위한 열화상 카메라가 보란 듯 놓여있지만, 도너츠가게 측면 문을 통과하는 사각지대 또한 보란 듯 뚫려있다. 어디 수도권이나 울산뿐이겠는가? 대한민국 전체가 허술한 사각지대 투성이라고 느끼는 사람 또한 필자뿐 아닐 것이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정부조직을 뜯어고치는 큰 변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만에 다시 ‘불안한 대한민국’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디테일의 부재’. 필자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조금 더 신경 쓰면 될 부분들을 우리는 항상 놓치는데, 그 원인은 우리 모두가 ‘디테일’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그럼 우리는 왜 디테일 감각이 부족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에 필자는 어쩌면 말도 안되는 ‘조상탓’을 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재 고려청자의 상감문양을 보면 학과 구름을 표현한 섬세함에 놀라지만 사실 문양간 간격이 일정치 않고, 청자의 모양이 대칭도 아니다. 반면 중국의 송나라 자기는 ‘극악’수준의 문양간 간격의 일정함이나 형태의 대칭성이 돋보인다. 우리 전통건축은 대들보가 저마다 다른 모양, 다른 길이이고, 문틀이나 담장이 기하학적 원형과 거리가 있으나, 일본 전통건축의 해당 요소들은 완벽한 대칭성, 숨막히는 정밀도에 답답함을 느낄 정도이다. 늘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교열위인 기술적 디테일을 ‘자연을 닮거나 이해하는 한 수 높은 조상의 예술경지’라며 스스로를 높이고 있다. 같은 한국인으로써 이에 동의하지만, 필자는 지금 역사관이나 예술관의 틀로 아름다움의 기준이나 비교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세한 이유는 설명이 더 필요하겠지만, 우리 조상대대로부터 내려오는 ‘디테일에 취약한 습관’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낳은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충대충’과 ‘빨리빨리’가 마치 우리의 장점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을수록, ‘디테일’이 자리하는 공간은 줄어든다. ‘음식맛은 손맛!’이라며 요리의 달인같은 기능적 숙련도에 열광할 뿐, ㎎, ㎜ 단위까지 명기하는 일본이나 프랑스 요리처럼 정교한 레시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식의 현재 모습, 그저 맛있다고 자화자찬일 뿐 검역 등급이 국제기준에 맞지 않아 해외로 수출도 못하는 한우의 상황이 여기저기 구멍 난 메르스대책으로 갈팡질팡하는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악착같이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래라 저래라 지침에만 따를 뿐,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피부간 접촉을 차단할지, 어떻게 하면 역을 출입하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열화상카메라에 담게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 ‘이 정도면 괜찮아’라는 ‘셀프 힐링’에 가까운 판단 때문에, 우리는 항상 고생의 늪을 벗어날 수 없다.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 과학이나 예술의 영역도 ‘뼛속까지 시린 디테일’적 연구나 고민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코 훌륭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달인’이 인기를 얻고, ‘넘겨짚기’가 판치고, ‘봐주기’가 미덕이 되는 곳에는 ‘완성’이 있을 리 없다. ‘끝없는 미완의 대한민국’만 있을 뿐. 조상 대대로 내려온 ‘디테일이 귀찮은’ 이곳에서 요즈음 필자는 디테일을 가르치고 전파하기가 참 힘들다.
정연우 유니스트 교수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본 칼럼은 2015년 6월 16일 경상일보 19면에 ‘[경상시론]메르스와 디테일, 귀찮음증’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