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는 불안, 슬픔, 화 등의 부정적 감정에 휩싸인 사람들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간다. 모든 것을 바로잡는 것은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대한 슬픔에 공감하고 일상생활을 해 나가도록 돕지만 사건 자체를 바로잡지는 못한다. 일상이 무너진 내담자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듣기’다. 자신이 무엇으로 인해 힘든지 본인도 모르니 함께 찾아가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이런 ‘듣기’ 기술은 일대일 상황이 아닐 때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필자는 4년 전부터 50명 규모로 마음, 행동, 뇌의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첫 학기 강의 만족도가 500여개 강의 중 하위 97.5%로 나와 충격을 받아 선배 교수님들께 여쭤봤다. 처음에는 다양한 기대를 가진 학생들이 신청해서 실망했다가 학생들 사이에 어떤 수업인지 알려지면 만족도가 오른다고 하셨다. 그런데 3학기가 되도록 100명 중 뒤에서 2~3등인 강의 만족도는 변하지 않았다. 강의평가 사이트 익명후기는 괜찮은데 학교의 일괄평가 점수는 왜 변화가 없을까? 아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좋았다고 하는데 뭐가 문제일까? 매번 인원 초과로 추가신청을 하는데….
일괄평가의 주관식 불만족 답변에 힌트가 있었다. 내용이 많다. 과제가 적다. 어렵다. 쉽다. 극과 극의 반응이라 직접 강의 안에서 익명 설문을 했다. 큰 노력 없이 쉽고 재밌게 듣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용어 등 어려운 점이 많았고, 배경지식이 있어 더 깊이 공부하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다양한 주제를 조금씩 다루는 점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답을 얻었다. 교양으로 분류되어 있어 교양 필수학점을 채우기 위해 들었는데 원하던 것과 달랐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에 두 학기에 걸쳐 조금 더 천천히 깊이 배우고 전공 선택과목으로 분류를 조정하여 성격을 확실히 했다. 그리고 첫 주 강의시간을 모두 할애하여 강의의 목적과 대상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설명했다. 보통 대학 강의가 첫 시간에 전체 수업 일정을 설명하고 출석을 확인하는 정도인데 비해 큰 차이다.
학생들의 숨은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전하고 싶은 바를 강조하니 97~98등인 만족도는 90등이 되었다. 여기에 강의계획에 대해 간단한 쪽지시험과 함께 수강신청 변경 기간 내에 작은 시험을 추가하니 몇 명이 수강을 취소했고 강의 만족도는 70~80등 대로 올랐다. 이 정도면 여전히 신청인원이 초과되는 상황에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태도나 열의도 더 좋아졌다.
익명 설문을 통해 강의록 배경색을 조정하는 등의 개선도 있었지만 가장 기본적인 발전 요인은 ‘충족할 수 없는 기대’를 가진 상대에게 미리 설명한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이 강의의 목적과 형태가 이러하니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힘을 들여 전달한 것이다. 시간과 에너지가 들더라도 말이다.
필자는 5000명의 학생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부속기관을 운영한다. 매년 학교 부서들의 만족도 결과를 받으면 속이 상한다. 언제든 아플 수 있는데 밤이나 휴일에도 당직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기숙사에서 너무 멀리 있으니 분소를 만들어주세요. 부서원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요구다. 병원도 아닌 학교에 당직 의료인을 두는 것이 가능한가? 어디서든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작은 캠퍼스인데 분소를 운영하라고? 그런데 잘 들어보면 급할 때 어떤 도움을 받아야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나,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닌데 구급약품을 구할 수 없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에 벽걸이 구급함을 설치하고 휴일, 야간 의료기관 안내를 강화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불만족한 상대방은 엉뚱한 요구를 할 수 있다. “그 사건이 없었으면…”이라는 표현을 듣더라도 거기에 실린 의미를 잘 들어야 한다. 안타까움을 공감하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함께 찾아야 한다. 상대가 여럿이라면 비슷한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은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은 안타깝지만 더 나아지는 방안을 제시하고 공유할 때 올바른 소통의 시작이 될 것이다.
정두영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 헬스케어센터장
<본 칼럼은 2019년 10월 11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 여러 상대의 불만을 줄이기 위한 의사소통’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