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녔던 1990년대 후반 과기원은 정신건강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살 소문만 돌았을 뿐이죠. 저는 졸업 후 다시 의대를 다녔는데 동물행동 유전자 연구경험을 떠올리며 막연히 뇌 관련 전공을 상상했습니다.
학생실습과 인턴을 마치고 나서야 정신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여기에는 본과 때 여자친구와의 일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똑똑하고 예쁜 ‘오래 아는 동생’과 연애는 즐거웠습니다. 해가 지날 즈음 그녀는 갑자기 미안하다는 문자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해할 수 없으니 화도 나고 슬펐습니다. 몇 년 뒤 만나 우리 병원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학생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정신과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다고 말한 기억도 났습니다. 몇 달 지나 응급실 사고구역에서 인턴과 환자로 마주치게 됩니다. 어머니를 위로하며 더 일찍 알아내지 못했을까 자책했습니다.
인턴 마지막 날도 드라마 같았습니다. 인턴 근무가 끝나고 전공의 당직을 하러 이동하던 중에 한 때 룸메이트였던 옛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이상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조증 같았습니다. 치료를 권하니 괜찮을 거 같다며 거부했지만 결국 두 달 뒤 저희 병동에 입원했습니다. 최우수 성적장학금도 받았던 녀석인데…. 두 경우 모두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까지 10년 가까이 걸린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전공의가 된 후로 적어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고는 막고 싶었습니다.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친구에게는 적극적인 치료를 권했습니다.
저 자신도 포함됩니다. 3년차에 결혼을 준비하며 갈등이 심해져 부부치료를 교육해주시는 선생님을 미리 찾아가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스로 불면이나 무기력이 심해질 때는 동기끼리 약물치료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전문의가 되고 암환자 연구를 하면서 누구나 힘든 상황에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진료 지원을 가서는 여러 어려운 단계를 이겨낸 학생들도 스트레스가 많은 것을 직접 느꼈습니다. 좀 더 일찍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면 이들이 사회에 좋은 일을 더 많이 하지 않을까 싶어 3년 전에 유니스트에 와서 캠퍼스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병원을 떠난 그해 가족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누이가 삼십대에 말기암에 걸립니다. 막내가 겨우 두 살이었죠. 바로 정신과 자문 진료를 받도록 했습니다. 종교활동을 시작하고 3년을 잘 버텨왔습니다.
같은 해 네 살인 제 아이가 말이 늦어 소아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2년 뒤 더 정확한 평가를 해보니 자폐증 경계에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보면 차이를 잘 못 느낍니다. 많을 때는 주 5회 치료를 받아왔는데 만약 치료를 늦췄어도 같은 결과를 얻었을까요? 아이도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가 심한 로스쿨 공부를 하는 아내에게도 진료를 권했습니다. 많이 도움이 되어 후배들에게도 권유했는데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저도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자 분석적 정신치료를 5개월째 받고 있습니다.
좋지 않았던 경험이 편견을 만듭니다. 누이의 첫째가 우울해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엄마도 아프고 사춘기까지 왔으니까요. 동네에 명문대 출신의 소아정신과가 있길래 권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처음에 기본으로 수십만원 검사를 하고 바로 좋아져서 끝났다네요.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큰 돈을 썼다니 정신을 차려야지’하고는 다시 친구들과 잘 놀고 활발해졌다고 합니다. 검사가 초반에 필요한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진행되는지 알려줄 필요도 있습니다.
정신과 진료는 대개 후기를 남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좋은 경험인 경우도요. 요즘 저희 학생들은 대개 고민을 나눈 선배로부터 권유받아서 옵니다. 입소문으로 경험이 공유되어서죠. 도시라면 동네에 나를 잘 치료해줄 정신과는 많습니다. 만약 후기가 없어 어렵다면 약간의 힌트를 드립니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 시간과 비용을 먼저 알아보고 예약을 하고 가세요. 내게 맞지 않으면 옮겨도 됩니다. 한 번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우니 몇 번은 경험해보세요. 미용실처럼 바로 결과를 알 수 없으니까요.
정두영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 헬스케어센터장
<본 칼럼은 2019년 11월 12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 정신과 의사가 쓴 정신과 후기’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