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스쿨존에서 차에 치여 숨진 김민식군의 이름을 딴 ‘민식이법’이 국회를 통화했다. 주요 내용은 스쿨존 내 과속단속 카메라와 과속방지턱, 속도제한, 안전표지 등의 설치에 관한 것들이다.
민식이법의 요지는 스쿨존에서 30km/h 이상 과속할시 벌점과 범칙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어린이보호구역에 관한 법은 사실 1995년부터 시행되어 왔으나 스쿨존 속도규정이 거의 지켜지지 않자 과속카메라를 설치해 안전을 강제적으로 보장하는 것에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지만 스쿨존 과속방지와 안전보호 정책은 유럽과 미국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 잡은 문화다. 굳이 단속카메라가 없어도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30km/h, 미국 대부분의 주들도 스쿨존에서 32km/h 이하를 철저하게 유지하도록 돼 있다.
어린이들이 스쿨존에서 일어난 사건 기사들을 접하다 보면 한국의 부부들이 여전히 불안한 사회적 안전망 때문에 출산하기 더욱 망설여진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된다. 스쿨존에서의 과속방지와 안전보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물론 그동안 아이들의 등하교 안전을 위해 횡단보도 이용 시 아동이 안전하게 대기할 수 있는 옐로카펫(횡단보도의 벽과 바닥에 가시성이 좋은 노란색을 칠해 아동을 잘 볼 수 있게 해 교통사고 예방)이나 스쿨존 지역 교통신호등 커버를 노란색으로 칠하는 행정적 개선도 있었지만, 민식이법은 근본적으로 한국인들의 약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결여가 낳은 비극이자 해프닝이다.
미국의 경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이미 그들 문화의 일부가 된지 오래다. 특히, 미국의 스쿨존은 교통뿐만 아니라 마약, 폭력, 무기 등으로부터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구역으로 스쿨존 내에서는 어린이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유해요소들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차량 통행이 어린이 보행안전보다 결코 중요하지 않다’라는 대원칙 아래 스쿨존에서 들어서면 누구나 느림보 거북이가 된다. 이른 아침 아이들을 태우는 노란 스쿨버스가 정차하면 뒤따라오던 차들도 마주 오는 차들도 모두 정지한다, 모두가 바쁜 출근시간인데도 말이다. 노란 스쿨버스 앞뒤로 길게 늘어선 일시 정지된 차들과 아침 스쿨존에 줄서서 느릿느릿 서행하고 있는 차들을 보고 있자면 그 기다림과 느림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매일매일 학교를 오고 가며 배운다. 그곳에 과속단속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경찰관이 숨어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미국의 대표적 문화 아이콘 중에 하나인 기부문화도 결국은 어릴 때부터 보고 경험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 듯하다. 안전해야할 스쿨존에서의 속도제한이 지켜지지 않아 과속단속카메라를 강제로 설치토록 법까지 시행하는 것은 몰염치한, 의식 없는 운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좋은 소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주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세월호 사고를 비롯해 굵직굵직한 가슴 아픈 사고들을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자기 자식만 중하다는 이기심과 안전에 대한 공감의 부족을 보여주는 참 슬픈 현실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 단계는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 욕구, 존경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 욕구로 구성되며 한단계 한단계를 거치면서 인간의 욕구는 충족된다. 안전은 그의 욕구 피라미드의 기초에 위치하고 있다. 인간의 다양하고 고차원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안전은 반드시 디디고 가야할 발판이다. 그런데 그 욕구들은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구성원들 모두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소속감, 존경, 자아실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제품을 디자인할 때도 그 원리는 마찬가지이다. 디자인할 때 디자이너는 사용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재료, 구조, 크기, 무게, 전원, 색상, 버튼 위치 등등 여러 측면 모두를 고려한다. 그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다면 안전하지 않은 제품이 되고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시장에서 퇴출된다. 이렇듯 사회의 한 구성원이자 미래인 어린이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다면 그 사회는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국가 생산성과 국제 경쟁력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사회 구성원들 전체가 안전하다고 인식되지 않는데 워라밸, 여유로운 주말, 가족공동체 회복, 복지와 자아실현, 그리고 그로 인한 내수 증대와 생산성 향상을 외치는 것은 30km/h 속도제한 스쿨존에서 과속을 하는 것과 별반차이가 없어 보인다. 속도를 줄이면 주변의 아름다움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스쿨존에서 속도를 줄이면 등하교하는 아이들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그 아이들이 우리들의 아이들이고, 그 아이들의 미래가 우리의 미래다.
김차중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9년 12월 17일 울산매일신문 18면 ‘[매일시론] 스쿨존의 미학’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