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식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얼마 전 연말 모임에서 한 지인이 불쑥 던진 화두다. 곧바로 분석이 시작되었다. “음 재료는 얼마쯤 되겠고…”. 거기에는 큰 이견이 없었는데, 그 담부터 복잡해졌다. “인건비는 얼마쯤 되겠는데” “어 그건 좀 과한 것 같은데요?” “이 정도 식당이면 어떤 급 쉐프니까 얼마는 나오지 않겠어요?” “시설비나 운영비도 포함되어야 하죠”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재미있는 것은 모두 동의했던 재료비를 제외한 항목에 대해 인정, 산출방식이 제각각 달랐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재료비같이 눈에 보이는 대상의 가치매김은 쉽게 합의되지만, 인건비, 시설비, 운영비, 브랜드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의 가치매김은 쉽게 합의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눈에 보이는 것을 우선시한다. 가장 객관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단순히 외모나 시각적인 외양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학력, 경력, 재력 같은 항목,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스팩이나 이력서, 실적, 업적, 재직증명서, 소득금액증명원, 납세증명서 등도 한눈에 들어오는 객관적 지표다. 이런 ‘보이는 것의 가치’는 각종 심의, 심사에서 중요한 판단근거로 작용한다.
문제는 객관성 확보라는 미명하에 눈에 보이는 가치만을 최우선으로 평가, 판단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가 폄하, 제외된다는 점이다. 필자가 심의했던 한 전시관성격의 공공사업을 보면 전체 예산의 80% 이상이 건축물, 시설물 구축에만 쓰이고, 전시를 하고 유지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단 5%도 안되는 예산이 배정되었다. 전시가 주목적인 전시관을 구축하는 사업에 건축비가 대부분이고 왜 컨텐츠를 구성하는 비용이 터무니없이 적은지 담당관에게 따져 물었다. 단지 돈을 쓴 흔적이 확실히 눈에 보이는 건축비에 집중하는 것이 추후 감사나 자금집행증빙 시비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란다. 면피를 위한 관행이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가치가 깡그리 무시되며 지금 이순간에도 엉뚱히 진행되는 사업과 프로젝트, 과제, 평가, 교육, 채용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보이지 않는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모든 문제의 해결이다. 객관화에 어려움이 있는 많은 사안, 개별적 이슈일 수 있지만, 목적에 부합하는가를 기준으로 하나하나를 살피는 수고를 감수한다면 가능하다. 글 앞 음식의 가치 이야기로 돌아가서, 어떤 레벨의 쉐프가 만들었는지, 그 쉐프의 전문성에 부합하는 음식인지, 어떤 공간에서 어떤 그릇에 담겨 나오는지, 이 음식점이 위치한 장소성까지 세심히 살핀다면 합의에 이르지 못할 만큼 어려운 가치 산출도 아니다. 각종 선발, 심사에서 두루뭉술한 스펙과 지표보다 직무관련 역량과 사업성과를 자세히 견주어 본다면 충분히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누구를 대상으로 얼마만큼 어떤 전시를 할 것인가 하는 전시 컨텐츠에 대한 기획 능력을 살피고, 그에 따른 공간 계획을 심의한다면, 엉뚱한 껍데기만 지어놓고 몇 년 후 또다시 갈아치우는 구색 갖추기식 시설물을 구축하는 예산낭비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문화가 발전할수록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가 더 중요해진다. 디자이너로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주업인 필자가 할 말이 아니라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 눈에 보이는 가치, 결과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억겁의 노력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용자 관찰, 조사, 경험을 통한 문제의 발견부터 해결점을 찾기 위한 아이디어 전개, 시나리오를 통한 검증을 거쳐 비로소 시각화에 이르는 과정 전체가 디자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디자인=겉모습이라고 말한다.
결론은? 아는 것이 힘이다. 기껏 음식의 재료비 정도만 따지고, TPO(Time, Place, Occasion), 브랜드의 가치와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 밥줄만 지킬 수 있다면 사업, 과제, 인사, 건축이고 뭐고 어떻게 되더라도 규정대로만 하면 나는 상관없다는 이기적인 사람, 블라인드심사의 취지도 모르고 평가가 어렵다고 툴툴거리는 사람들은 올해가 가기 전에 ‘안목’의 뜻을 찾아보시라.
사물이나 사람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찾아내는 능력이 안목이다. 안목이 높을수록 많은 사람이 따르고, 좋은 결과가 만들어진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신뢰하고, 일은 가치있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란 안목에 달려있다.
안목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근사한 새해가 되기를!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9년 12월 24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