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시대에 부응해 ‘스마트시티’라는 개념이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기간에 부산 에코델타시티 시범도시 착공식에 참석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2.8㎢ 규모에 생태 환경과 4차 산업혁명 주요 기술을 적용해 건설되는 에코델타시티는 세계 최고의 스마트시티를 목표로 한다.
스마트시티의 본질은 진보된 기술을 활용해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있다. 컨설팅기업 맥킨지가 세계 60개 주요도시의 스마트시티 중점사업을 조사했더니 안전·헬스케어·에너지·물·쓰레기·교통 (Mobility)·주거와 지역주민의 소통이었다. 그 중에서 교통·주거·헬스케어·안전이 가장 강조됐다.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에서는 스마트시티를 이끌어가는 주요 기술로 스마트그리드와 자율주행·사물 인터넷 (IOT)·5G·사이버보안·클라우드·자율학습을 꼽았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기술을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을 잘 닦아야 한다.
스마트시티는 인간에게 두 가지 고민을 안긴다. 첫째는 기술이 과연 삶의 질 향상으로 연결될까. 단순히 기술만 강조한다면 기계와 인공지능이 노동력을 대신해 실업이 만연하거나 인간의 감성이 메말라 가는 노동력 상실 사회가 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혁신을 무시한 채 사회적 스킬만 강조하는 도시는 소득과 성과가 뒤처질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한 사회에서 어떻게 기술 혁신과 사회적 유연성을 동반할 수 있는가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다른 국가에서 300년 이상 걸린 변화가 불과 60년 만에 이루어졌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KTX를 타면 목적지까지는 빠르게 도달하는데 주위 경관이나 환경을 보기가 어렵다. 목표는 빠르게 달성했지만 이에 걸맞은 문화가 정착될 시간이 부족했다. 가장 큰 것이 배려와 소통의 문화이다. 자기 주장에 앞서 상대편의 의도와 내용을 이해하려는 포용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고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상대방을 포용하는 의식이 자리 잡을 때 신뢰비용 (cost of trust)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둘째 고민은 현재의 스마트시티가 소비 지향적이어서 생산은 언급되지 않는다. 생산과 생산을 위해 필요한 자원(순환자원 포함)이 스마트 기술과 연계될 때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 생산과 연계된 스마트시티를 스마트 산업도시라고 부르고 싶다. 특히 부산·창원·울산·포항과 같은 산업도시는 생산과 소비와 삶을 연계한 스마트 산업도시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스마트 제조와 물류 혁신을 아우르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이 필요하다. IT(정보통신)와 OT(제조 운영 기술)의 결합이다. IT 전문가들이 공장에서 현장을 배우는 융합적인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산학계와 정부 또한 기존 틀을 깨는 파괴적 혁신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혁신을 하려면 연구자와 공공기관이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소통해야 한다. 신기술을 보유한 유능한 연구자는 현장을 배우려 하고 산업 현장은 열린 마음으로 신기술 활용의 기회를 맞이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연구·개발(R&D) 전문가 양성이다. R&D는 시간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성과가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단해선 안 된다. 최근 몇 번의 경험을 반추해보면 정부나 공공기관은 보여주기식 단기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얕은 지식 기반의 창업이나 성과는 일시적 칭찬을 받을지언정 지속 가능성이 없다. 제발 기술개발·창업·제조 혁신에 전시행정식의 성과 발표는 그만하길 바란다.
올해 초 한 대기업 회장과의 사적인 대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싸이월드는 페이스북보다 먼저 개발되었는데 왜 빛을 보지 못했을까요”라는 질문에 “그때는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오고 어떤 형태로 발전한다는 것을 제시해 줄 실력 있는 전문가가 부족했습니다”고 답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동섭 UNIST 교수·경영공학부 학부장·4차산업혁명 연구소장
<본 칼럼은 2019년 12월 31일 국제신문 26면 ‘[과학에세이] 싸이월드는 왜 페이스북이 되지 못했나’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