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S 페라리’라는 영화가 두 달전 개봉했다. 자동차광인 필자는 개봉일 관람을 시작으로 여태까지 3번을 내리 본 영화다.(읽기주의: 스토리 스포 있음). 세기의 대결은 세상에서 제일 빠른 차라는 타이틀을 레이스우승으로 증명하는 페라리의 노력 VS 더 많은 차를 판매하기 위한 수단으로 페라리를 이기겠다는 포드의 야심이다. 1등에 대한 목적이 다른 두 기업의 모습을 60년대 르망레이스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화 속 페라리는 피아트그룹으로의 기업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페라리는 더 좋은 협상조건 확보용으로 포드를 끌어들이고 이용한다. 그렇게 ‘모욕당한 포드’가 복수를 위해 르망레이스 참가를 선언하고 경주용차량 개발을 시작한다. 결국 포드가 르망에서 페라리를 제압하고 우승함으로써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철저히 포드 쪽 내용이다. 포드의 야심을 실현하는 도구로서의 캐롤쉘비와 캔마일즈의 “페라리 뿌시기” 스토리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 영화는 ‘포드 VS 페라리’가 아닌 ‘캔마일즈 VS 비비’다. 최초의 르망우승 미국인 레이서 캐롤쉘비와 영국 이민자 출신 레이서 캔마일즈가 한 축이고, 판매량 확대 방편으로 르망레이스를 택한 포드와 부사장 비비가 반대편이다. 레이스 우승에 대한 본능적 도전의식이 가득찬 두사람캔마일즈와 캐롤쉘비, 그들은 순수하다고까지 할 만큼 더 빠른 차를 만드는 데 온갖 노력을 쏟는다. ‘타도 페라리’가 목표인 포드개발 GT40 차량을 끊임없이 테스트하고 성능을 개선하는데 목숨을 바치고 인생을 갈아넣는다. 그들은 진정한 열정가다.
반면 비비는 철저한 전략가다. 그에게 포드의 레이스참여나 우승은 중요사안이 아니다. 그의 관심사는 포드의 차량판매 확대를 위한 브랜드이미지 획득여부다. 나중에 포드의 레이스 참여결정으로 ‘타도 페라리르망 우승’이라는 공동목표가 생겼지만, 그에게 우승차 레이서가 포드 소속이면 될 뿐 굳이 캔마일즈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비비는 첫대면에서 본인에게 무례했다는 개인적 이유로 캔마일즈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악당으로 비춰진다. 굳이 영화적 시각에 전도될 필요는 없지만, 영화를 본 모두가 캔마일즈에 공감하고 비비를 싫어하는 이유는 찾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일까?
열정 VS 수단. 일에 대한 태도다. 부당한 처사에 아랑곳 않고 레이스 우승과 빠른 차만들기에 집념을 쏟는 태도는 ‘열정’이라는 에너지로밖에 설명이 안된다. 돈벌이로 레이스에 나가고 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레이스와 차 만들기가 삶의 이유 혹은 전부인 캔마일즈의 열정은 아름답고 가치 있다. 조직내 자기 지위 강화가 목적인 비비에게는 그런 열정조차 수단이 된다. 차만들기와 르망레이스 우승까지도 지위를 공고히하는 포트폴리오로 여기는 그의 태도는 참 못났고 밉다.
우리는 어떤가? 내가 하는 일이 좋아서 그 일을 묵묵히 하고 성취와 보람을 느낀다면 그것은 열정이다. 착한 식당과 맛집, 몇 대에 걸친 장인과 기술, 대가를 바라지 않는 봉사와 기부는 열정이다. 세파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분야에 정진하는 수많은 연구자의 모습은 열정이다. 어떤 일이든 직업이든 자신의 책임에 충실한 마음은 열정이다. 열정이 붙은 일은 중단되는 법이 없다. 오래 지속된다. 그러나 그저 돈버는 수단으로 택한 일에서는 열정이 없다. 단지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만드는 음식이나 행하는 서비스, 업무, 기술, 의술과 연구는 겉치레뿐이다. 유행과 돈을 좇아 순간순간 바뀌는 태도에 열정이 있을 리가. 나는 캔마일즈인가 비비인가
수십년전 포드를 모욕했던 대가를 혹독히 치른 페라리는 여전히 레이스에 출전중이다. 1위를 다투며 세계에서 제일 빠른 차를 만든다. 페라리를 추월한 우승 몇년을 끝으로 포드는 일찌감치 르망레이스를 그만두었고, 지금은 그저 “팔릴 듯 팔리는 차”를 만든다. 포드 VS 페라리의 승자. 페라리라는 열정은 영원한 별이 되었다. 세상 시끄러운 지금이다. 우리에겐 열정이 필요하다.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20년 1월 21일 경상일보 19면 ‘[정연우칼럼]포드 VS 페라리 : 열정이라는 별’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