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당신이 이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1점(매우 불행하다)에서 5점(매우 행복하다) 중에 몇 점이라고 답할까?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행복은 나이에 따라 예측 가능한 패턴을 보인다고 한다. 대략 성인의 초기, 중기, 후기를 지나면서 행복은 U자의 형태를 띤다. 만약 당신이 중년의 나이라면, 즉 대략 40세에서 60세 사이에 있다면, 인생의 가장 불행한 골짜기를 걷고 있는 것이다.
20세부터 40세인 성인 초기에는 부푼 꿈과 이상이 있다.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의 과정, 미래에 대한 희망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끈다. 한국에서는 흙수저와 삼포세대라며 청년들의 절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젊음과 꿈이 있다. 아직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행복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는 시기다.
성인 중기인 40세부터 60세까지는 자신이 꿈꿔왔던 것들이 사실은 달성하기 어려운 것임을 깨닫게 된다. 세상의 높은 벽을 올라가기엔 자신이 가진 사다리가 너무 짧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구나 이제 혼자가 아니다. 돌봐야 할 아이들, 갚아야 할 대출금, 챙겨야 할 부모님이 있다. 세상에 혼자 멋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가장 깊다. 행복 곡선의 가장 바닥에 있는 셈이다.
60세부터 80세, 성인 후기에 접어들어 드디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게 된다. 채워지지 않을 목표와 희망을 포기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인생의 속도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인생의 방향을 점검하고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생각한다. 어느 순간 내가 집착했던 목표가 하찮은 것으로 보인다. 상황은 변하지 않지만 나름의 행복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유럽 아시아 국가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 현상이다. 즉, 40~60세의 사이의 중년들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 삶의 행복도가 가장 낮다. 연구에 의하면 한국인은 47.9세쯤에 가장 불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서 2017년 발표한 한국의 평균 기대수명은 82.7세이다. 여자는 85.7세, 남자는 79.7세라고 한다. 아마 사람들은 인생의 반환점을 지난 50대가 돼서야 지나간 삶을 후회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의 압박이 가장 크게 느껴질지 모른다. 보통은 50세 전후에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한다. 어제까지 같이 일했던 동료와 친구들의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의 한계와 절망이 가장 크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의 불행은 점점 회복된다.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자신을 세상에 맞춰 살게 된다.
요즘 한국사회는 취업난과 결혼·출산을 포기한 청년들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또한 고령화로 인한 노인복지에 큰 관심을 갖는다. 든든한 직장과 안정적 수입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년들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직장 내에서 중년들은 꼰대, 고지식한 집단으로 표현될 뿐, 진정으로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중년 직장인들은 인생의 가장 불행한 골짜기를 걷고 있음에 틀림없다. 미국의 한 경영학 교과서는 각 국가별 직무만족도 조사를 보여준다. ‘당신은 지금 업무에 어느 정도 만족하십니까?’ 한국 직장인들의 직무만족도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높을까? 놀랍게도 (몇몇 독자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겠지만) 한국인들의 직무만족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가장 낮게 조사됐다. 6점 만점으로 조사된 나라별 직무만족도에서 1위를 차지한 곳은 멕시코(5.88)였다. 그 뒤를 이어 스위스(5.72)와 노르웨이(5.63)가 있다. 미국은 5.46, 일본은 5.45이다.
한국은 4.76으로 나타났다. 연구조사에서는 한국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가 붙어있다. 한국의 직무만족도가 낮은 이유는 위계적이고 수직적 조직문화와 통제 중심의 업무환경 때문이다.
종합해보면, 중년들은 인행의 U자 행복 곡선에서 가장 아래에 속한 집단이다. 동시에 한국은 직무만족도가 가장 낮은 나라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중년은 가장 불행한 집단 중에 하나일 것이다.
홍운기 UNIST 경영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20년 1월 28일 울산매일신문 19면 ‘[매일시론] 가장 불행한 47.9세’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