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세월호, 매년 터지는 대형 재난을 목격하며 대다수의 시민들은 무력감을 넘어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국가적 규모의 재난 앞에서 그 동안 자부하던 첨단 기술은 다 어디 갔는지, 차분하게 사태를 설명하고 위기를 해결할 만한 전문가는 없는 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절망감이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매년 정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의 2014년도 과학경쟁력은 세계 6위, 기술경쟁력은 8위로 명실상부한 과학기술 선진국이다. 하지만 재난이 닥치자 기술은 있는데 사람은 없다. 아이러니다. 그 동안 선진국을 추격하기 위한 과학기술의 외형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만 노력했지, 이러한 첨단기술들을 이용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소홀했던 치명적 결과이다. 선진국의 또 다른 기준은 유사한 재난에 어느 정도까지 소중한 인명 손실을 막아 내느냐에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면, 결국은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자연 재해로부터 사회적 재해에 이르기까지 미래의 재난들이 더욱 다양해지고 대형화될 것으로 예상하며, 이에 따라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사태는 대형재난, 복합재난의 상징이다. 해저 지진으로 발생한 규모 9.0의 강진은 건물붕괴와 대형화재 등의 1차적 피해를 가져왔으며, 아울러 지진으로 인한 대형 쓰나미가 해변 도시들을 덮치는 2차 피해가 발생했다. 더욱이 수몰된 원자력 발전소에서 전력 상실로 인한 원자로 폭발이 발생하며 대량의 방사능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3차 피해가 발생했다. 일본 내 사망·실종자가 2만명, 이재민이 20여만명이나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에 국경은 없었으며, 인접 국가로의 방사능 확산과 심각한 수산자원 훼손 등 전 지구적인 피해로 이어졌다. 강력한 지진에도 대응이 가능하도록 내진 설계로 단단히 방비했던 해안가의 원전들이 예상 못한 침수 정전으로 폭발했던 것은 결국 기술에만 의지하고, 재난관리 전문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고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유연하게 방비하지 못했던 위기관리 체계의 허점 때문이었다.
전근대기에는 재난이 일어나면 하늘을 원망하며 운명으로 받아들였으나, 21세기 지구촌은 첨단 과학기술로 선제적, 체계적 대응이 가능해지고 있다.
특히 메르스같은 신종재난, 대형재난, 복합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재난관리 전문가는 다학제적, 융합적 인재여야 하며, 아울러 재난상황의 긴밀한 정보 교환과 방재 자원의 공유를 위해 국제적 감각을 지닌 전문가여야 한다. 이러한 전문가는 공학적 재난 기술을 이해하고 이에 맞추어 재난관리 정책과 행정을 같이 할 수 있는 인문 사회적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그간 우리나라의 재난관리 담당인력은 대학에서 일반행정, 토목, 건축, 도시계획 등을 공부한 전공자가 전담해왔으며, 소방, 안전분야의 전공자들 또한 화재 등의 세부적 재난 유형에만 치중, 재난관리에 특화된 학위과정은 없었다. 반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서는 2000년 이후 상위권 대학에서 특화된 재난관리 인력 양성 학위과정을 활발히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9.11 테러,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겪으며 미국에서는 2015년 현재 총 170여개의 방재관련 학위과정이 있으며, 정치, 행정, 공공관리, 기술경영 등 여러 학과의 과목과 연계돼 재난관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가 합쳐져 융복합적 사고가 가능한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동경대와 교토대 등에서 부설 방재연구소와 연계하여 방재기술 개발과 교육을 결합한 대학원 학위과정이 잘 정착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2014년부터 방재안전직렬을 신설해 전담공무원 등을 채용하고 있으며, 지자체 등에서도 방재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이러한 전문가 수요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부터 오로지 재난 만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제부터 재난의 예방, 대비, 대응, 복구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다학제적 융합적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석사급 박사급 전문가들을 집중 양성하기 위한 대학원급의 고급 학위 과정을 지원하고 육성해야 한다.
이명인 유니스트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5년 6월 25일 경상일보 19면에 ‘[경상시론]통합적 재난관리를 위한 전문가가 필요하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