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카이스트 학·석사 출신의 사회복무요원(공익근무요원)이 하루 8시간씩 6개월에 걸려 처리할 수 있는 업무를 코딩을 활용하여 하루 만에 끝냈다고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수천 건의 우편물 수신자·발신자 목록을 정리하는 작업을 크롤러(웹 상에 존재하는 정보를 찾아 특정 데이터베이스로 수집해 프로그램)를 만들어 자동화한 것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단순반복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 사례로서 충분히 칭찬받을만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가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모두가 일과 삶의 균형 속에 행복하게 살아가는 미래사회를 꿈꿀 수 있지만 그 변화의 과정이 누구에게나 장밋빛은 아니다. 인공지능, VR, 3D 프린팅, 블록체인 등 신기술들이 등장하며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들을 만들어 내는 반면 노동집약적인 전통적인 일자리들은 점차 설자리를 잃고 관련 종사자들은 실업의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점이나 레스토랑들이 키오스크를 이용한 자동 주문을 도입하면서 상당수의 저숙련 노동자들을 위한 일자리가 감소한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버(Uber)는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공유경제 플랫폼을 개발하여 390만명의 드라이버들이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동시에 기존의 택시 운전사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타다’와 같은 모빌리티 비즈니스와 택시업계 간의 대립은 기술 기반의 신산업과 기존 산업 간의 갈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머지않은 미래에 자율주행 기술이 성숙하여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된다면 택시 운전사는 사라진 직업이 될 것이다. 기술발전으로 직업이 생성, 소멸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그 과정에서의 사회적 갈등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기업, 노동자, 정부, 시민단체 등이 함께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울산도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예외는 아니다. 울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된 공업도시로 시작하여 1인당 지역내 총생산, 1인당 개인소득 등에서 전국 1위를 오랫동안 지켜오며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수도의 위상을 누려 왔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구조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 울산시는 수소경제, 동북아 오일·가스 허브, 부유식 해상풍력발전, 원전해체산업 등과 같은 에너지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현대자동차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 제어 기술이 융합된 스마트팩토리를 중심으로 울산시 관내 제조업 혁신이 확산됨에 따라 연구개발 일자리는 증가하겠지만 자동화 기술이 노동자들을 대체하여 기존의 노동자들의 설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변화가 더뎌 보이지만 이미 울산도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전통적 일자리 소멸의 큰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울산이 스마트 산업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신기술 기반의 제조업 혁신에 집중하여야겠지만, 이와 더불어 변화의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어려움을 겪는 시민, 노동자들과 함께 미래를 설계해 갈 수 있는 포용적 도시로서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기술 진보의 혜택을 모든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람중심의 혁신이 되어야만 진정한 스마트도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갈등 해결을 위하여 노사정이 협력하고 대학이 기술 혁신과 재교육 역할을 담당하며 정부는 재교육 동안의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울산형 포용적 일자리 전략 마련에 지역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정섭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20년 2월 14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 4차 산업혁명 시대 포용적 일자리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