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프로젝트 미팅이 있어 답답한 마스크를 온종일 쓰고 서울출장을 다녀왔다. 오는 기차 안에서 읽은 신문에서 주말섹션의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정부 브리핑시 수화 전달자가 마스크를 쓰지 않는데, 그 이유는 마스크를 쓸 경우 의미 전달이 절반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마스크가 의사소통도 차단하는 모양새다.
인간의 의사소통은 글자를 읽어 소리를 내는, 즉 말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실제 서로 눈을 맞추고 말할 때 의미전달이 훨씬 정확하다. 의식하지 않아도 인간은 상대가 말할 때, 눈동자와 눈썹, 입술과 안면근육의 움직임, 손과 팔의 제스처까지 동원 가능한 모든 시각정보를 종합하여 의미를 판단한다. 음성통화나 문자송수신에서 곧잘 오해가 생기는 것은 대면으로만 가능한 시각정보수집이 가로막힌 탓이다. 더 나아가 외국인과 주고받는 손짓 발짓처럼 말과 문자가 불가능할 경우, 시각정보가 유일한 소통의 도구가 된다. 만국공통 신호체계에서 초록색은 안전, 노랑색은 주의, 붉은색은 정지를 의미한다. 기호를 이용한 장애인표시, 방향표시, 경고표시 등의 안내표시도 문자 대신 쓰는 시각정보다. 스포츠종목 픽토그램, 제품 사용설명서 그림도 마찬가지다. 컴퓨터 화면, 휴대폰 속 아이콘도 언어나 말을 대체하는 시각정보다. 각종 포스터, 광고 그래픽, 사진과 영상은 언어보다 훨씬 강력한 의사전달 도구임을 입증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사태에 직관적 의미전달 수단인 시각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너도나도 마스크를 쓰니 시각정보 소통은 더 어렵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대면 커뮤니케이션은 더 더 없다. 뉴스를 전하는 매체마다 제각각인 시각자료, 통계 그래프형태와 배색은 더 더 더 혼란스럽다. 마스크 올바른 착용법은 이제 귀 닳도록 듣지만, 마스크 쓰고 벗기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의 수는 시각포스터로 안내받은 사람의 경우보다 크게 떨어진다. 검사 및 대응 요령을 안내하는 시각자료의 퀄리티도 한참 모자란다. 이제 전 국민이 이골난 휴대폰 비상알람확진자 동선 안내도 마찬가지. 무작정 나열된 문자로 동선을 파악하기란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다. 순서에 따른 직관적 그래픽과 화살표 안내가 훨씬 이해도 쉽다. 의료현장마다 표준 없이 마구 출력해서 쓰고 있는 안내표시와 문서는 물론 형태·색상도 제멋대로인 방호복과 마스크, 등급마크, 포장재는 개인마다 판단을 달리하게 만든다. 긴급상황에서 소통혼란은 치명적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인데, 우리 현실은 화살표 모양이나 서체조차 현장마다 시간마다 담당자마다 제각각이다.
엊그제, 덴마크에 사는 필자의 지인이 페이스북에 코로나 대응 관련 국가포스터를 올렸다. 오랜 디자인 강국답게, 보는 즉시 이해되는 ‘간결 끝판왕’ 픽토그램 포스터였다. 게다가 흑백버전과 컬러버전으로 구분되어 있고 누구나 직접 출력하고 배포할 수 있게 규격화 되어 있단다. 애국심에 욱해서 우리 것을 찾아보니, 온 천지 아기자기한 그림에 복잡한 한글 설명이 가득하다. 울긋불긋 대한민국 코로나 포스터는 그 마저도 표준없이 제각각이더라.
이것이 과연 디자인 수준의 차이 탓일까? 아니다. 대한민국 디자인은 이미 세계 수위급이다. 세계디자인어워드를 휩쓰는 디자이너와 기업이 가득한 대한민국. 우리국민은 세계 누구보다 디자인에 민감하고 트렌드에 관심 많은 멋쟁이들이다. 그런데 왜? 그것은 공공 디자인 의식이 없어서다. 아직도 시간-장소-상황에 따른 쓰임새와 상관없이 그저 알록달록하고 장식적이면 좋은 디자인이라 여기는 담당자와 입안자들은 제발 고집 피우지 말고 전문가 의견을 따르시라.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응은 의료체계와 국민의식부문에서 세계 최고역량을 보여주고 있고, 곧 좋은 결과로 맺음할 것이다. 긴박한 시스템 속 시각정보를 최적화하고 사용자 경험과 서비스를 컨트롤하는 디자인도 제대로 기능한다면 우리는 더 빨리, 더 수월하게 코로나 사태를 극복할 테다. 얼른 마스크 벗고 웃는 얼굴들을 보고싶다. 어려울수록 감각 안테나를 세우고, 소통에 더 정성들여야 하는 법. 코로나 디자인.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20년 3월 17일 경상일보 19면 ‘[정연우칼럼]코로나 디자인’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