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적극 추진되면서 우리 사회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양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확대하고 있고 대학의 강의는 대부분 온라인 강의로 대체되고 있다. 전국 의료기관에서도 한시적으로 전화 상담과 처방 등 원격진료가 시행되고 있다. 대면접촉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오던 업무와 서비스들이 신종코로나의 위기 속에 공간의 제약을 넘어 원격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실생활에 시나브로 다가온 이러한 변화를 바라보며 미래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어떠한 공간 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될까 생각을 해본다.
기술의 진보가 어떠한 도시환경을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도시 공간의 집중과 분산이라는 상반된 대답들이 지속적으로 제시되어 왔다. 소품종 대량 생산이 보편화되어 자동차가 모든 가정에 보급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던 1930년대, 근대 건축의 거장들은 상반된 미래도시 구상을 제시하였다. 르코르뷔지에는 ‘빛나는 도시(Radiant City)’ 구상에서 도심에 초고층 빌딩들이 입지하고 도심 내 마천루들과 주변의 주거 지역들이 입체화된 도시고속도로들로 기능적으로 연결되는 집중화된 대도시 형태를 이상적인 도시 아이디어로 제안한다.
반면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자동차, 완벽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라디오, 전화 등 전기적 통신, 표준화된 공장 생산 등 기술진보가 탈중심화(decentralized)된 시민들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으면서 ‘브로드에이커 시티(Braodacre city)’ 구상에서 초저밀의 자급자족적인 유기체적인 도시 형태를 이상적인 도시 아이디어로 제안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심도시들은 쇠퇴하고 자동차 중심의 저밀도 교외지역의 성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미국 도시들과 도심 중심의 고밀 개발 형태가 주로 관찰되는 아시아권 도시들의 사례에서 기술진보가 도시공간의 집중과 분산에 미치는 영향들을 엿볼 수 있다.
1990년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고 정보화 사회로의 이행이 가속화되면서 인터넷이 도시공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이 다시금 불붙은 적이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재택근무가 보편화 되면 통근 시간과 비용에 대한 제약이 줄어 굳이 일자리가 집중되어 있는 도심 근처에 집을 얻을 필요가 없어 도시가 분산될 것이라는 주장과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는 중요한 정보들의 교환이 대면접촉을 통해 이뤄지기에 도심에 고차서비스 기능이 더욱 집중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최근에는 4차산업혁명 시대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된다면 자동차 운전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활동이 가능하여 자동차 이용의 시간비용이 절감됨으로 인해 주거지 입지가 도심에서 멀어져 도시의 분산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특정 이론이 다양한 국가, 도시 맥락에서 발생하는 변화들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기술진보가 가져올 미래 도시의 공간구조 변화 가능성에 대하여는 새겨볼 필요성이 있다.
인간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끊임없이 거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해 왔다. 고속철도, GTX 등 대규모 교통인프라 투자 및 건설을 통하여 접근성 향상을 도모하고, 정보통신기술에 기초한 온라인 원격 의사소통을 강화하여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진보의 결과가 어떠한 미래의 도시환경으로 나타날지는 단순히 과학자, 건축가, 도시계획가들의 흥미로운 논쟁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미래 도시공간구조는 어떠한 곳을 개발하고 보존할지, 어떠한 도시교통 인프라를 계획하고 공급할지, 도시서비스 기능을 어디에 배치할지 등 우리 실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울주군의 입지로 도농복합도시의 공간 특성을 가진 울산은 4차산업혁명 시대 도시공간구조 변화의 가능성이 크기에 기술이 가져올 미래 변화에 대한 고민과 계획이 더욱 필요할 수 있다.
김정섭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20년 3월 17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 기술진보와 도시공간구조’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