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을 과거(Yesterday)-현재(Today)-미래(Tomorrow)라는 3가지 시제로 구분한다. 재미있는 것은 미래, 내일을 뜻하는 투모로우(Tomorrow)라는 시제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미래에 방점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나 현재는 목표일 수 없다. 흔한 SF영화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무언가를 조작하는 것도 결국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닌가? 지난 총선도 ‘표심 향방’ 같은 번잡한 분석 다 필요 없다. 최선이든 차악이든 궁극은 내가 믿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정당과 후보의 과거와 현재가 미래 선택의 지표라는 점은 연결된 3개의 시제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관계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코로나는 현재에 미친 큰 영향이다. 최근까지 사회-경제-문화-기술 영역의 그 어떤 변화량도 코로나를 만난 즉시부터 무의미한 데이터가 되어버렸다. 기존 흐름과 전혀 다르게 미래를 바꾸는 모양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의 모든 영역, 모든 활동에 지속가능성이라는 미래 의미를 잣대하며 중대한 의문과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시스템, 재난대응, 비상경제지원 같은 국가 체계부터 변할 것은 누구나 안다. 온라인 강의시행을 계기로 교육과정과 교육기관, 심지어 교육자의 역할도 큰 변화에 직면했다. 비대면 형태로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경우에 따라 오프라인보다 더 효과적인 학습법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학교, 대학은 단순한 지식전달의 장소 이상의 의미를 입증하는 것에 존폐여부가 달렸다. 마찬가지로 진작부터 고민했던 존재의 이유, 강의자 역할이 전부인지, 교육자, 교사, 교수의 의미를 묻게 되었다. 수많은 기업과 기관은 강제적(?) 재택근무를 경험했고, 그 놀라운 효율성은 이제 업무형태와 범위를 크게 바꾸는 중이다. 영역의 가치비중도 달라진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인류가 어디에 더 많은 가치를 둘 것인가를 깨달았으니까. 의료, 보건, 생명, 과학기술처럼 인류생존이 직결된 영역은 스포트라이팅을 받고 있다. 수십수백억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 초고액 연봉자들의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연봉삭감이나 기부 봇물은 상대적으로 과대평가되었던 영역이 어딘지 생각하게 되었다.
마스크, 이제 우리는 사시사철 어디에서나 마스크 쓴 얼굴을 일상으로 마주할 것이다. 마스크가 위생-방역 도구를 넘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되고, 사회에서 공공예의 지표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마스크 착용이 정상적인 일상화로 받아들여짐에 따라 의생활의 일부가 되어, 곧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 마스크가 패션브랜드에서도 발표되고, 전자제품의 한 영역으로도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마스크 외에도 새로운 모양과 구조를 가진 장갑이나 개인위생제품, 보호구들이 디자인되어 세상에 나올 테다. 엊그제 프로젝트 관련 디자이너들과 회의중 사담에서, 마스크 일상화가 만든 ‘웃픈’ 뉴스 하나를 소개한다. 지문인식 기술을 제치고 스마트폰을 포함, 수많은 제품과 앱에서 널리 쓰이는 안면인식기술이 더이상 개인인증 수단 역할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 지면에 밝힐 수 없지만, 그래서 기업들은 벌써 안면인식기술을 대체할 다른 개인인증수단 개발에 열심이란다.
위생개념의 강화는 기차역, 공항은 물론 식당이나 업무공간의 레이아웃도 바꾼다. 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 등 운송수단의 좌석배치와 모양새는 개인별 구획이 우선되고 위생안전이라는 팩터가 디자인된다. 대면을 기피하는 현상은 인간-기계 사이의 인터렉션 디자인 연구를 폭증시켰다. 그리고 일자리 보전을 기치로 무인운영시스템, 공장자동화, 노동의 로봇 대체에 저항하는 움직임은 힘을 잃게 되었다. 앞으로 누가 바이러스 감염을 감수하면서까지 키오스크 주문이나 자율주행 무인택시를 싫다고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기술혁신과 인식변화는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나 오히려 가속도를 얻었다. 4차산업 혁명이네, 제조업 혁신이네 어쩌네 전부를 압도해버렸으니, 코로나 대혁명이라 불러도 마땅하다.
코로나 이후의 미래, 내일은 이렇게 오늘의 ‘변화’를 통해 한참 제조되는 중이다. 그 내일에 사회, 문화, 경제, 기술영역은 마침내 평정상태를 회복하겠지만 삶의 모습만은 많이 다를 것 같다. 평범해서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예전의 우리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마주앉은 상대의 얼굴표정을 읽고, 활짝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모습은 이제 2020년 2월 이전 인류의 추억이 되었다. 악수와 포옹 같은 신체접촉을 매개한 따뜻하고 정감있는 인사가 코로나 이후의 내일에서도 가능할까? 행여 불가능하다면, 그래도 어떤 새로운, 따뜻한 인간적인 인사가 생겨나지 않을까?
새로운 인사법이라니 맙소사. 웃기지도 않지만 그런 보잘것 없는 희망이 인류의 내일이다. 그래서 가장 멋진 시제, 미래의 미래세계(Tomorrowland)를 기대한다.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20년 4월 28일 경상일보 19면 ‘[정연우칼럼]미래(Tomorrow)의 미래세계 (Tomorrowland)’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