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욕에 있다. 마이크론 수준의 존재와 사투를 벌이는 이곳에서 거의 매일 한국이 언급되는 것을 미디어를 통해 들으면서 요새처럼 한국이 선진국으로 느껴져 본 적이 없다. 외국에 있으면 애국자가 된다지만 요새는 ‘국뽕’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이 방역에 성공해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 성공으로 한국은 북한과 남한의 프레임을 벗어나 건국 이래 전 가장 긍정적인 관심을 세계로 부터 받고 있다. 2000년대 삼성 갤럭시, 현대 자동차, LG 냉장고와 TV 등 한국산 제품으로 시작돼 K-POP, 한식 그리고 최근 봉준호 감독과 그의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수상 하는 등 우리의 문화까지 관심을 가지는 유래가 없었던 바야흐로 한국의 시대이다.
그런 높아진 위상에 감격스러워 하고 있지만, 일상은 큰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두달째 가택연금(?) 중이다. 그렇게 장기간의 자택대피령은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며 티격태격하기보다 네모난 얼굴들(디스플레이)과 소통을 더 자연스럽게 만들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장기간의 격리로 인해 TV, 게임기, 스마트 기기 등의 수요가 폭발적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는 매일 가족들과 얼굴 보는 시간보다 까만 디스플레이와 일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그 녀석들을 터치하고 터치하고 또 터치한다. 자고로 터치의 전성시대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집밖을 나서면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 바이러스의 숙주인 인간을 터치해서는 안 되고 또한 일상에서 존재감 없던 문손잡이, 카트, 카드결제기, 현금인출기 등등 익숙하던 모든 것을 터치하면 위험하단다. 장기간의 한식에 질린 가족을 위해 햄버거를 테이크아웃하면서 카드 결제기에 손이 닿지 않게 용을 쓰다 카드를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바닥은 위생에 더 취약한데 말이다. 여하튼, 이런 와중에 새로운 터치리스(touchless) 서비스들이 미국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 대면하며 해야만 했던 서비스가 빠르게 온라인을 통한 터치리스로 전환되고 있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에서는 주유소 펌프를 통해 전염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터치리스 이동주유소가 등장했다. 스마트폰으로 주유를 요청하고 결제하면 기름을 실은 차가 주차된 차량에 주유를 해주고 간다.
포스트 코로나의 뉴 노멀을 예견하며 이런 터치리스를 고려한 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비말 확산 유효거리를 기준으로 6피트(약 1.8m) 오피스가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기존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데스크들을 6피트씩 띄워서 배치한다는 공간 디자인 아이디어다. 이는 오피스에만 국한 되지 않고 식당 그리고 강의실에도 적용되어 머지않아 6피트 캠퍼스까지 나올 것이라고 한다. 친구나 가족이 아니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비행기 중간좌석도 앞으로는 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병원이 감염 위험지역이다 보니 굳이 가지 않고도 소비자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소매 건강 제품과 서비스도 논의되고 있다. 이렇듯 포스트 코로나의 세상은 모든 것들이 터치리스로 가면서 터치리스 제품과 서비스가 대세가 될 듯하다.
그런데, 미국에 있다 보니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 터칭(touching)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 단어는 ‘감동적’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결국 ‘터치’가 ‘감동’이라는 의미인데, 세상이 터치리스로 간다니 이는 우리가 앞으로 감동 없는 세상으로 간다는 의미가 아닌가?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여러 가지 사회 이슈로 스킨십도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마당에 사회적 동물인 인간간의 소통이 터치리스로 간다니 비인간적 사회의 탄생이 우려된다.
예일대 역사학자 프랭크 스노든 교수는 ‘전염병’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린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치명적인 전염병은 역사적으로 전쟁과 혁명을 유발해왔다고 한다. 결국 이번 코로나 팬데믹이 야기하고 있는 인간 소통의 터치리스화는 특히 터치리스 서비스에 접근하기 힘든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집단들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국의 경우, 부실한 건강보험과 고용 시스템으로 인해 많은 흑인들, 히스패닉들, 그리고 이민자들이 그 희생양이 되고 있다. 럭셔리 제품의 대명사인 루이비통 그룹은 프랑스에서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시기에 자사의 향수, 화장품 공장에서 손세정제를 생산토록 했고, 입생로랑, 발렌시아의 회장은 럭셔리 가방 제조 공장을 의료용 마스크 생산 공장으로 탈바꿈시켰다. 터치리스 시대를 대비해 국가, 조직, 그리고 기업을 이끄는 선제집단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들을 터치하는 과감한 정책과 출구전략으로 우리 모두가 터칭(감동)하는 그런 팬데믹 이후의 세상을 기대해본다.
<본 칼럼은 2020년 5월 18일 울산매일신문 14면 ‘터치리스 사회’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