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상반기 뉴스의 핵심 키워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었다면 하반기에는 부동산이 될 것 같다. 신종코로나로 인한 보건과 경제 위기 이슈가 부동산 가격 급등과 대책 발표에 묻히고, 부동산 민심을 잡기 위한 여야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여당은 속도가 중요하다며 충분한 논의 없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부동산 관련 세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신속히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과거 부동산 시장 규제를 앞장서 반대하며 임대인을 옹호해 왔던 야당은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초선 국회의원의 연설이 주목받자, 갑자기 전세 소멸을 앞세우며 임차인들을 위하는 정당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주택공급 확대라는 목표하에 서울시의 개발제한구역 활용을 압박하기도 하고, 기존 서울시의 주거지 높이 관리 기준을 뒤집는 초고층 공공재건축 개발, 기성시가지 내 노른자위 땅의 개발을 직접 발표하는 등 지방정부의 도시 및 주거정책에 직접 개입하는 모양새다. 부동산 정책이 부동산 정치로 변질되어 버린 답답한 현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중앙정부가 나서서 지역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각종 대책을 발표하고 추진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 스마트폰처럼 전 국민이 하나의 시장에서 동질적인 재화와 용역을 사고파는 것과 달리, 주택시장은 기본적으로 지역(local) 단위로 형성되고 각 지역마다 상이한 주택 문제를 가지게 된다. 서울과 같이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에서는 높은 주택가격으로 인한 심각한 주거비 부담 해소와 주택가격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가 핵심 주거 이슈가 된다. 하지만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 도시들에서는 증가하는 빈집 관리가 문제일 수 있고, 농촌 지역에서는 귀농귀촌 단지 조성을 통한 인구 유입이 주거정책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전국의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살고 싶어 하는 서울에서는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라 불리던 열악한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하여 청년 전용 공공임대주택(행복주택)의 공급 확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부담가능한 풀옵션 원룸을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대학생 수 자체가 많지 않은 울산에서는 행복주택이 아닌 다른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주거지원이 더 필요하다. 즉, 각 지역마다 특수한 사회경제적, 도시적 맥락 속에서 해당 지역 내 주택의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지기에 주거정책은 철저히 지역 기반으로 설계되고 추진될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도 주택시장의 지역성을 주거정책에서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는 재정 지원과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제공 역할만을 담당하고, 지방정부가 주도하여 모든 주거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한다. 미국의 경우, 연방주택도시개발부에서는 임대주택 공급과 주거바우처 제공에 대한 재정 지원 역할을 담당하며 지역 주택청이 주도로 지역 특성에 부합하는 저소득층 주거정책을 직접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도, 모든 지방정부는 주택배분기준(housing allocation scheme)을 자율적으로 수립하여 지방정부 고유의 주거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주거정책 관련 법과 제도가 중앙정부 주도로 마련되고 지역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더구나 이들 제도는 서울의 주거문제 대응과 해결을 위하여 설계되었기 때문에 다른 여건을 가진 지방도시들에 적용될 때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중앙정부 주도의 주거정책으로는 당장 부동산 시장 과열의 ‘급한 불’은 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택시장의 지역성 때문에 시민들이 체감하는 실질적인 주거문제 해결이 어렵다. 지역의 주거문제는 지방정부가 가장 잘 파악을 하고 있기에, 어디에 어떠한 주택을 누구를 위하여 공급할 것인지 지방정부 주도의 맞춤형 주거정책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주거정책의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의 중앙정부의 재정지원 확대와 지방정부의 행정 역량강화 노력은 필요조건이다.
김정섭 울산과학기술원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20년 8월 13일 경상일보 14면 ‘[경상시론]지방정부 주도의 맞춤형 주거정책은 없는가’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