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체어(Barcelona Chair)’라는 의자가 있다. 건축가 미스반데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디자인해 1929년 스페인 만국박람회 독일관의 라운지 의자로 사용됐다. 이 의자의 디자인은 간결한 모더니즘의 정수다. 반짝이는 X자 금속 프레임에 직육면체 쿠션 등받이와 방석을 얹은 바르셀로나 체어는 ‘장식미술 표현재’였던 가구를 ‘디자인 철학의 시각화 도구’로 변화시킨 아이콘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아이콘이 요즘 더 많이 쓰인다는 아이러니다. 호텔 라운지, 모델하우스는 물론 TV나 영화속 고급진(?) 장소에 고정출연한다. 가까이는 필자의 집 거실에도 있고, 유니스트 104동 10층 회의실에도 있다. 그 뿐인가. 미래가 배경인 SF영화에도 곧잘 등장한다. 20세기초 디자인된 의자가 아직 도래하지도 않는 30세기까지 쓰이니, 가히 1000년 작품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가치와 쓰임새가 줄지 않는 디자인을 하고 제품을 만들어 세상에 남기는 것 만큼 멋진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Timless(영원성)는 우리 삶에 필요한 또하나의 통찰력이다.
그러나 21세기 ‘물질 풍요의 홍수’ 시대 중인 우리는 Timeless를 좀처럼 찾기 어렵다. 산업혁명 초기에 비해 지금은 무엇이든 디자인하고 만들 수 있는 시대임에도 제품 수명은 오히려 더 짧아졌다. 기술 발달로 물리적 수명은 늘었지만, 디자인과 기술 교체주기가 짧아져 사용기간은 오히려 줄었다. 내가 구입한 옷이 아무리 예쁘고 마음에 들어도, 수시로 몰아치는 ‘신상(신상품) 태풍’에 찬밥신세가 되고만다. ‘유통기한’은 고작 1년 남짓이다. 가전도 자동차도 1년이면 새모델로 바뀐다. 오죽하면 ‘연식’으로 구분하고 시세를 매길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Time(시간성)의 가치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물리적으로 닳은 가치를 감하여 중고가격을 정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연식이 더 크게 작용한다. 물리적으로 닳은 가치가 0임에도 연식 지난 재고 신차는 대폭 할인해 준다. 의류도 마찬가지. 가격표도 안 땐 새제품인데도 시즌만 지나면 곧장 세일이다. 그러니 명품 아울렛에서 80% 할인구매를 ‘개이득(?)’이라 생각하지 마시라. 당신은 이미 가치 다 떨어진 상품을 제값 다 주거나 오히려 더 주고 사는 꼴이니까.
현대는 디자이너나 기업의 의도로 Time(시간성) 가치를 정하는 시대다. 시간성 가치를 이용해서 제품을 상품으로 바꾼 예가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패스트 컨슈밍(Fast consuming)이다. 그리고 이 개별적이고 극단적인 이익추구가 인류공동체와 지구에 해를 끼친다는 사실 또한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혜안은 시간성 가치를 높이는데 골몰하자는 것. Timeless다. 내가 디자인하는 제품이 오랫동안 쓰이고 어떤 기업이 생산하는 자동차가 아름다움으로 극찬받고 우리가 산 옷이 몇년을 입어도 예쁘면 된다. 건축물이, 아파트가, 공원이, 조형물이, 공공시설이 몇년, 몇십년이 지나도 리모델링할 필요가 없을만큼 세련되면 된다. 글처럼 쉽지 않지만, 미스반데로에의 바르셀로나 체어도 보지 않았나? 시간 흐름에 영향받지 않는 가치를 지향하는 것 Timeless. 그 인사이트가 인류의 삶에 공헌한다.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20년 8월 18일 경상일보 015면 ‘[정연우 칼럼]TIMELESS: 시간 흐름에 영향받지 않는 가치 지향’ 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