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휴 교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격리중인 해외 입국자 부부가 확진 판정을 받고 다음날 한 명이 추가로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마침 서울의 대형 집회와 교회로부터 시작된 전국 확산으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꼈던 울산과 교내의 분위기도 어수선해졌습니다. 특히나 부부의 경우 확진 이전에 무단이탈을 했기 때문에 방역당국의 조치만 기다릴 수 없었던 학교는 연휴 내내 비상근무로 대응했습니다. 다행히 교내 추가 감염은 없었고 방역당국에서 필요하지 않다는 부분까지도 확인해가며 상황을 마무리했습니다.
상황은 종료됐지만 이제까지 외부인의 출입이 적어 안전하다고 생각해왔던 학생들은 많이 놀란 것 같습니다. 사실 매일 서너 명의 입국자가 캠퍼스 내에 격리되고 안전을 확인한 후 함께 생활했으니 수백 명의 격리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학생, 연구원뿐 아니라 출장, 연구년을 마치고 온 내·외국인 교수들도 있었습니다. 그 많은 인원 중에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을 뿐이죠. 교내에서 발생한 첫 확진자가 무단이탈을 했고, 같은 비행기에서 또 다른 확진자가 나왔고, 수도권에서 전국으로 확산되는 뉴스가 나오니 더 불안해졌을 것입니다.
감염으로 인한 불안 외에도 기대하던 행사들이 취소되는 불편도 겪었습니다. 접촉을 최소화하며 졸업을 기념하려고 했던 행사들도 취소되거나 축소됐습니다. 이 실망감이 분노로 이어져 ‘담당’ 직원에 대한 비난, 해당 국가에 대한 혐오 표현이 지속됐습니다. 확진자의 동료를 통해 사실과 가정이 섞여 과장된 소식이 전해졌고 ‘담당’ 직원에 대한 비난이 거세졌습니다. 사실 기사 제목에 쓰인 ‘할랄푸드’는 소문에 등장하지만 보건소의 탐문, GPS, 카드 추적, 교내 확인 등 어디에서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국가와 인종에 대한 혐오표현은 외국인 혐오로 이어졌습니다. 각자가 경험한 외국인과의 불쾌한 경험으로 학교가 외국인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고의로 언론을 통제한다는 음모론도 있었습니다. 소위 엘리트 학생들의 표현이 맞습니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혐오 표현을 자제하자 하고, 전체 시스템의 관점에서 개선점을 찾으려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일반화에 의한 집단혐오를 역지사지로 생각해보자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비난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황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아 학생회와 간담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그 전에 학생들의 익명게시판에 직접 글을 올려 제가 아는 한에서 소통을 시도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세한 상황을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 정보와 인권을 보호하면서 소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담당’ 직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맡은 일들이 있었을 뿐이죠. ‘담당’ 직원을 찾아내서 징계해달라는 학생들의 요구는 유령을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학생이 학교 행정 프로세스를 다 알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내 불편을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질문해야 ‘개선’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헤어질 친구가 아니라면 ‘늦으면 내가 기다려야 해’ ‘돈 안 갚으면 나도 빌려야 해’ 등 직접 나의 불편을 표현해야 합니다. 짜증만 내는 것 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더 쉽습니다.
안타깝지만 학교는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인권과 법률에 의해 격리장소에 잠금장치나 CCTV를 설치할 수 없습니다. 정부에서 검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한 사람을 강제로 검사할 수 없습니다.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인구 밀도가 낮아 조금 더 안전할 뿐입니다.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안전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번화가나 밀집지역을 다니는 것 보다는 안전할 뿐입니다. 거리에도, 아파트 단지에도 해외 입국자가 있고 확진자의 n차 접촉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학교는 격리를 편하게 할 수 있게 입국자를 돕고, 접촉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검사비를 지원할 뿐입니다. 이탈의 억제는 정부가 정한 규정 안에서 당국에 의해 관리됩니다.
또 안타깝게도 CCTV에서 마스크를 안 쓴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꽤 긴 기간 위험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외부의 침입은 막고 나는 안전하고 편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좋은 행동을 권하고, 피해를 끼치는 행동은 억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단이탈에 책임을 지우는 것만큼이나 표현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합니다. 연휴가 끝나자 진료실에서는 학교 익명게시판을 보다가 우울해졌다는 학생이 나옵니다. 힘들어서 앱을 지우다보니 제가 연 ‘게시판 간담회’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내가 힘들었던 것이 싫었던 만큼, 남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봐야죠. 참고로 저는 그런 사람을 제 연구실에 받지 않습니다. 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도 팀의 실력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요즘은 공감도 능력이거든요.
정두영 UNIST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칼럼은 2020년 8월 21일 경상일보 19면 ‘[정두영의 마음건강(8)]불안을 혐오와 차별로 표현할 때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