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울산역에서 보면 ‘근대화의 메카 울산’이란 표어가 맞은 편 능선에 크게 붙어 있었다. ‘울산’이라고 하면 연상되는 단어가 무엇일까? ‘석유화학·자동차·조선의 공업도시’ ‘산업수도’ ‘부자도시’같은 긍정적인 것들과 ‘공장’ ‘공해’ ‘소음’ 등의 부정적인 것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지난해 취임한 김기현 시장은 ‘품격있고 따뜻한 창조도시 울산’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50년간 확고하게 굳어져 버린 울산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정체성의 뿌리는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근거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울산은 ‘학의 고장‘이었다. 회학, 비학, 무학산, 학성산, 신학성, 학성 등 다른 지역에 비해 학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울산 동헌의 현판에는 반학헌(伴鶴軒)이라 쓰여있고 그 남문은 가학루(駕鶴樓)인데 복원 중이다. 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문화재 발굴조사 과정에서 윤곽이 들어난 객사 명칭은 학성관(鶴城館)이었다. 반구대에는 학들이 둥지를 튼다는 학소대가 있고 화학암(畵鶴巖)에는 학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태화강 십리대밭의 오산에 있었던 학천암(鶴天巖)에는 학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는데 수로 정비공사를 하면서 애석하게도 사라졌다. 지난해 5월에 준공한 태화루 천정의 서까래에도 학 4마리가 그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인 학은 천연기념물 제202호로 지정돼 있다. 울음소리가 ‘뚜루루’한다고 하여 두루미라고도 한다. 겨울철새인 학은 시베리아 쪽에서 중국, 한반도, 일본 등에 날아와서 겨울을 보낸다. 우리나라에는 3종류의 학이 오는데 흑두루미, 재두루미, 그리고 머리에 붉은 반점이 있는 단정학이다. 단정학은 현재 강원도 철원 민통선 부근에서만 볼 수 있다. 에쓰오일은 2008년부터 두루미를 포함한 멸종위기의 천연기념물 보호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학이 가진 이미지는 학자와 같은 고고함, 장수, 부부애이므로 예부터 많은 장식물에 등장하지만 요즈음은 안타깝게도 실물을 거의 볼 수가 없다. 조선초의 외교관으로 큰 공을 세운 학파(鶴坡) 이예 선생은 학성(鶴城)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태화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로와 왜가리를 학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들은 여름철새이며 학에 비해 덩치가 작고 목이 에스(S)형태로 구부러지며 나무에 주로 서식하지만 학은 나무에 앉지 못한다. 학과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황새는 머리에 붉은 반점이 없고 나무에서 서식하며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고 단지 부리를 부딪혀서 ‘딱딱딱’하는 소리를 낸다.
울산은 동해안쪽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개의 강 즉 태화강, 동천(강), 여천천(강), 외황강, 회야강이 형성한 광활한 늪지대가 있어 학을 비롯한 철새들의 서식에 적합했다. 이 늪지대는 공업화 과정에서 공장의 부지로 전환되어 공업화의 밑거름이 됐다. 울산과 역사적으로 깊은 인연을 가졌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학은 사라져 버렸다.
죽음의 강에서 생태하천으로 거듭난 태화강에 학이 돌아오게 하자. 태화강의 샛강 혹은 반구대에 학 공원을 조성하고 학 생태관을 건립해 학 탐조, 생태 연구 및 복원 그리고 울산의 아이콘이자 생태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 충남 예산군에서는 문화재청의 공모사업을 통해 190억원의 지원을 받아 금년 6월에 황새공원을 개설했다. 메르스 파동에도 불구하고 전국각지에서 관람객이 쇄도하고 있다고 하니 좋은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그 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던 태화강의 백로와 까마귀를 생태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울주군에서 건립 중인 국내 최대의 연어생태관과 연계하면 관광유발효과는 더욱 크게 될 것이다. 또한 천신이 금신상을 입에 문 쌍학을 타고 내려왔다는 신라말 계변천신 설화를 근거로 한 ‘울산학춤’의 개발자인 김성수 박사는 경북대 조류학 박사로서 경북대 조류생태연구소의 학 복원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어 울산의 학 복원을 위한 전문인력도 이미 준비돼 있는 상태이니 금상첨화격이다.
임진혁 UNIST 경영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5년 7월 15일 경상일보 18면에 ‘[기고]울산에 학 공원과 생태관을 건립하자’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