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시 정권 시절에 가솔린이나 디젤 같은 화석 연료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인식돼 석유 회사들이 위기를 맞았다. 그러자 석유산업의 메카인 텍사스주 출신인 부시 대통령은 2003년 ‘수소 연료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또 수소 자동차 중심의 수소 경제를 천명했다. 필자도 당시 미국 연구진들과 수소 저장·활용에 대한 연구를 한 기억이 생생하다. 한편으로는 부시 대통령이 환경오염이 적은 에너지원으로서 수소 경제를 지향하기보다 석유기업의 생명을 연장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미국의 수소경제 정책은 정권이 바뀌자 마자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이는 우리에게도 교훈이다.
수소(H)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존재하는 원소이다. 주로 산소·탄소·질소와 결합해 물 (H2O)이나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가스(CH4)·암모니아 (NH4)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수소를 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물이나 석유에서 수소를 분리해야 한다. 현재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천연가스 혹은 석유화학 제품으로 알려진 탄화수소(CnHm)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것이다. 탄소 대비 수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천연가스를 고온에서 물과 화합시키면 수소와 이산화탄소(CO2)가 발생한다. 그 외에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다 보면 부산물로 생성되는 부생수소가 있다. 부생수소는 CO2를 발생시키지 않는 ‘그린수소(green hydrogen)’가 아니라 ‘회색수소(grey hydrogen)’이다. 그 다음이 전기 또는 다른 에너지를 활용해 물 (H2O)을 분해하여 수소를 만드는 방법이다. 수소를 얻기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가 청정에너지가 아니면 수소 경제는 사실상 친환경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수소자동차 이야기를 해보자.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비교하는데 흔히 적용되는 비교법이 있다. ‘Well to Wheel’(석유를 채취하는 과정에서부터 자동차 주행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CO2의 총합) 이라는 기준이다. 즉, 수소차 자체가 얼마나 청정한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만드는 근원에서부터 수소차를 운행할 때까지 전 주기에 걸쳐서 CO2 발생량을 비교하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수소경제가 CO2를 포함해 환경을 오염시키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면 수소경제는 친환경과 거리가 멀어진다. 또한 전기 분해 방식도 그 전기를 공급하는 데 여전히 화석연료가 주력으로 사용되면 수소차는 선전용이 되어버린다.
물론 이는 친환경 수소경제로 가기 위한 과정이고, 수소차는 우리나라가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한 기회임에는 분명하다. 수소 생산 방식도 점점 진화 하여 경제성과 수용성이 점점 개선될 것이다. 대형 자동차나 선박에서 수소 암모니아 연료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수소의 수송·저장·안전성도 대용량이나 먼 거리 또는 밀폐된 공간이 아니면 천연가스 경험을 살려 실현가능하다. 이러한 기회를 잘 살리려면 보기에만 그럴듯한 정책이 아니라 상업적 성공을 위한 기술과 적합성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풍력·태양광에너지로 청정 수소를 만들겠다는 그럴듯한 청사진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태양광 전기는 낮 시간에 가장 많이 생산되므로 유휴 전력일 가능성이 낮다. 풍력은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지만 규모의 경제와 수송·저장까지 고려하면 경제성에는 여전히 의문이다. 요즘처럼 장마 태풍 홍수가 잦아지면 경제성에 대한 의문뿐 아니라 지속적 공급 차질까지 우려된다. 수소차 1대에 3000만 원 이상, 수소충전소 1개당 30억 원의 국가 예산 보조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이러한 정부의 지원이 없어도 지속적으로 성장할까?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결국 청정수소의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원자력 에너지를 활용해야 하는데, 현 정부의 상반되는 정책이 수소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소차 정책이 친환경 운송 수단이 되려면 철저한 논의와 토의를 통해 실현가능한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 지속가능한 수소경제는 민간 주도 기업중심의 발전 전략이 만들어지고 정부는 마중물의 역할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UNIST 교수·정보바이오융합대학장·4차산업혁명 연구소장
<본 칼럼은 2020년 9월 1일 국제신문 30면 ‘[과학에세이] ‘수소 경제’의 허와 실’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