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벌판뿐인 바닷가 사진. “이곳에 조선소를 짓고, 배를 3년만에 건조하겠다. 틀림없으니 믿어달라.” 까무잡잡한 작은 동양인 남자의 말을 들은 유럽인 사업가의 심정은 어땠을까? 기괴한 배가 그려진 낯선 지폐를 눈앞에 내밀며 “400년전 우리 조상이 만든 세계 최초의 철갑선 거북선이다. 기술을 믿어달라.” 재차 초대형 유조선 2척 발주계약을 독촉하는 사람에게 수천만달러 선금을 지급할 믿음이 티끌만큼이라도 있었을까?
1971년 스위스 몽블랑 별장에 찾아온 동양인의 황당한 제안을 듣고 있는 사람은 유럽 거대 해운사의 리바노스 회장이다. 동양인은 고 정주영 회장이다. 그날은 우리나라를 세계 조선 1위로 만들어준 역사적 순간이 됐다. 이 유명한 일화에 모두 고 정회장의 뚝심을 칭송하지만, 결국 그 계약을 ‘딜’이라 외치게 만든 것은 리바노스 회장의 ‘믿음’이다.
Trust, ‘신뢰’라는 이 단어는 삶에 필요한 인사이트다. 나와 연인, 가족, 동료, 사회의 상호작용은 Trust에 근거한다. 서로 사랑한다는 믿음 때문에 연인관계가 성립된다. 내 가족에 목숨 바치는 믿음을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직원-회사가 서로 믿으니 선노동-후임금 지급이 가능하다. 이처럼 모든 관계는 ‘상호신뢰’가 바탕이다. 반대 경우는 비극이다. 믿음 없으면 연인은 이별, 가족은 해체다. 친구사이도 깨진다. 노사간에도 믿음이 없으면 고용불안으로 잘 될리 없다. 파업이다. 온세상 분쟁과 대립뿐.
필자 경험도 마찬가지다. 좋은 부모 아래 구김없이 자라 어려서부터 사람 말을 잘 믿었다. 웃자고 하는 농담도 믿어버리는 바람에 웃지못할 해프닝이 많았고, ‘바보’ 소리도 좀 들었다. 고교 3년땐 부산역에서 양식장 사장이라며 급히 돈을 빌려 달라는 사기꾼에게 가진 돈 7만원을 다 건네준 적도 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라는 멘트를 들으며 전화기 붙잡고 분노했던 그날 밤. 이후로도 물건이나 돈떼임을 몇번 당했다. 그래도 여전히 필자는 사람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결별이나 이혼을 겪기도 했지만, 여태 큰 배신, 사기없이 학업과 연구, 성취는 모두 나의 믿음대로 이루어져 왔다. 디자인도 늘 필자를 믿고 지지하는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좋은 팀원, 좋은 동료, 좋은 제자들과 멋진 결과를 만들어 왔다. 이 모두 필자가 잘나서가 아니라 ‘믿음 받은 행운’ 덕이다.
대상이 불완전해도 존망을 위협하는 정도가 아니면 믿으면 좋겠다. 단기 성과를 쪼지 않고 꾸준한 믿음을 주면 누구나 아름다운 연구와 성공으로 보답한다.
엘런 머스크와 테슬라의 꿈 같은 비전이 차례로 실현되고 있는 것은, 그 꿈을 지지하는 팬덤, ‘믿음’ 때문이다. 말 한마디, 토시 하나까지 의심하며 서로 마이크로 크리틱하는 정치권의 불신은 우리 삶에 제발 껴들지 않기를.
황당 제안에 의심이 100개도 넘었을텐데, 파란 눈 리바노스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을 믿었고, 기적처럼 현대는 허허벌판 바닷가에 3년만인 1974년 유조선 2척을 완성한다. 훗날 대한민국은 조선산업 세계 1위가 됐다. 제2의 정주영, 제3의 엘런머스크가 나오려면 믿는 수 뿐이다. Trust는 인류의 삶을 지속하고 발전시키는 필수 인사이트다. 좀 믿자. 믿음은 당신을 해치지 않는다.
P.S. 제발 각 분야 전문가 말 좀 믿어달라.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20년 9월 22일 경상일보 015면 ‘[정연우칼럼]TRUST 신뢰 : “좀 믿어라”’ 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