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 규제자유특구위원회는 ‘울산 게놈서비스산업 규제자유특구 지정’을 의결했다. 이번 특구 지정으로 향후 4년간 2개 법적 규제사항이 면제되며 울산과학기술원, 울산정보산업진흥원, 울산대학교병원, 울산병원, 11개 관련 기업 등과 함께 ▲ 헬스케어와 정밀 의료서비스 산업화 실현을 위한 바이오 데이터 팜 구축·실증 운영 ▲ 심혈관질환·우울증 등 질환 맞춤형 진단 마커 개발 ▲ 감염병 대응을 위한 유전체 분석과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 등 3개 실증사업을 2년간 추진한다.
울산이 게놈 산업에 투자를 하면서 2015년 울산 만명게놈프로젝트를 수행한 이후 게놈 기반 신산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2030년까지 사업화를 통해 매출 2천억원, 수출 2천만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게놈(genome)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로 1920년 독일의 과학자 한스 휘클러가 가지류와 토마토의 이종 접합체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제안했다. 현재는 염색체의 의미는 제한적으로, 한 생명체가 가진 유전정보의 총체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된다. 전 인류의 최대 관심사인 코로나바이러스는 염색체가 없지만 게놈이라는 용어를 쓴다.
게놈을 분자수준에서 들여다보면 단순하다. 모든 생명체의 게놈은 A,T,G,C로 표현되는 4가지 염기로만 구성되어 있다. 컴퓨터의 2진법과 비교하면 게놈의 4진법은 훨씬 더 고차원의 정보 저장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과 침팬지는 비슷한 30억개의 염기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염기의 개수가 아니라 순서인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유전정보를 해독하는 것은 인간에 존재하는 30억개 염기의 순서를 알아내는 일인 것이다. 이 순서는 수정란이 만들어지는 순간에 결정되고, 개인에 따라 고유한 조합을 가지며, 인간이 살면서 계속해서 변화한다. 일란성 쌍둥이도 게놈 정보를 이용해 구별할 수 있다.
개인의 행태정보를 수집해 구글은 검색결과를 제공하고, 페이스북은 친구를 알려주고, 넷플릭스는 드라마를 추천한다. 많은 정보서비스 산업이 개인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로 발전했다. 게놈서비스 산업 또한 개인의 게놈정보를 바탕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키, 얼굴 등의 생김새는 물론이고 암,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 노화, 수명 등 우리가 ‘나’라는 존재로 표현할 수 있는 개인의 특성은 게놈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게놈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개인에게 특화된 의료, 헬스케어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놈서비스 규제자유특구 지정은 게놈이 가져올 미래 산업의 변화에 울산이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이고, 연구자이며 울산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게놈서비스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개인의 고유한 게놈 정보를 읽고 분석하고 응용하는 일은 국내에서는 법적으로 제한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특히 암이나 치매 등과 관련된 주요 질병의 정보는 의사 처방이 있어야 알 수 있고, 전체 게놈을 해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미국은 이미 2017년부터 23andMe와 같은 기업이 의사 처방없이 주요 질병의 게놈 정보를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2019년부터 Veritas genetics 사는 600 달러에 전체 게놈 해독 서비스를 하고 있다. 개인의 게놈 정보는 천부(天賦)의 고유한 것으로 소유권도 개인에게 있어야 하고 정보를 이용하는 권리도 개인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한 사회구성원의 합의가 시급하다.
울산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하는 대표적인 중공업 도시이다. 이런 울산이 게놈산업을 한다고 하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돌이켜보면 처음에는 다 그렇다. 현대가 처음 자동차를 만들 때도 그랬고, 삼성이 처음 TV를 만들 때도 그랬다. 울산에서 게놈서비스산업이 발전하는 것은 울산시와 울산시민, 울산과학기술원을 비롯한 연구 기관과 기업의 의지와 열정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미 울산은 게놈 정보를 해독하고 분석하는 일에 있어서 국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이번 특구 지정을 바탕으로 울산의 게놈 기반 기술력이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져 세계적인 게놈서비스산업 도시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조승우 울산과학기술원 교수
<본 칼럼은 2021년 1월 18일 울산매일신문 18면 ‘[기고] 울산 게놈서비스산업규제자유특구 지정’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