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에는 밝기를 구분하는 간상세포(rod cell)와 색깔을 구분하는 원추세포(cone cell)가 있다. 즉 인간의 눈은 밝기와 색상에 따라서 사물을 인지하고 구별하게 된다. 그런데 색깔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빛의 삼원색과 물감의 삼원색을 알아야 한다. 빛은 여러 종류의 파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빛을 가시광선이라 하고 세 가지의 기본색은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이며 빨강 바깥에 있는 부분을 적외선, 파랑 바깥에 있는 부분을 자외선이라 칭한다.
원색이란 어떠한 것을 혼합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원래의 색깔로 색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빛에 의한 색을 혼합해 매우 다양한 색을 만들 수 있다.
색의 삼원색은 빨강과 파랑을 섞은 진홍색(Magenta), 파랑과 초록을 섞은 청록색(Cyan), 빨강과 초록을 섞은 노랑(Yellow)이다.
우리가 보는 사물의 색은 빛이 반사되는 것인데 장미꽃은 초록과 파랑의 빛은 흡수하고 빨강을 반사하므로 빨간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색깔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색약 또는 색맹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색약 보정 안경을 끼워 주면 감격하는 경우가 많다. 있는 그대로의 색깔을 제대로 인식할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선글라스는 자외선을 차단하는 필터의 역할을 한다. 물론 자외선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그런데 이 색안경을 끼면 원래의 색깔이 아니라 변화된 색을 보게 되므로 원래의 색과는 다르게 보인다.
있는 그대로의 색은 인간의 눈으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차이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정도에서 소통이 된다.
빛의 삼원색은 더하면 더할수록 밝아지고 색의 삼원색은 더하면 더할수록 어두워진다.
언어의 우수성을 구분하는 방법 중 얼마나 많은 색을 표현하는가를 보는 항목이 있다고 한다.
색(Color)에 대해서 국제적으로는 공통된 표준을 정하여 명칭도 정하고 표본도 정하고 있다.
색은 정서적으로 인간 생활에 가깝다 보니 각각의 색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며, 색을 치료나 미용에 사용하기도 한다.
자연 현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의 조합은 무지개로 대표할 수 있는데, 무지개가 뜰 때 빨간색이 가장 윗부분에 있고 보라색이 가장 아래에 위치한다. 왜냐하면 파장이 긴 빨강이 에너지는 가장 작고 보라색의 파장이 가장 짧고 에너지가 크기 때문이다.
사물의 색은 보는 위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표면의 반사 각도에 따라서 반사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위치와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 색깔인데 한 지점에서 한 번만 보고 그 사물을 단정 짓는 것은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가 그린 ‘건초더미’라는 작품은 계절별, 시간별, 위치별로 다르게 보이는 빛의 효과를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마치 다른 것을 그리는 것처럼 그렸다고 한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것도 이토록 다양할진데 인간의 내면이나 생각을 제대로 알아보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단편적인 단어, 제목, 주제에 대해 비판하고 찬성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찬성과 비판을 위해 색안경을 끼고 있지 않은가에 대해 다각적인 고찰과 심사숙고를 통해 혼합된 색으로부터 원색을 찾아내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제대로 된 시각이 되는 것이다.
폴 세잔(Paul Cezanne)은 ‘사과 바구니(Basket of Apples)’라는 그림에서 하나의 평면에 두 개의 시각을 표현해 입체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후 피카소는 하나의 평면에 내·외부 및 전후좌우의 다양한 시각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입체파의 대표가 되었고, 그 의미는 2차원 평면에 다시점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53클럽(인구 5000만 이상,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7개국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역사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눈, 이념을 보는 눈, 상대방을 보는 눈도 흑과 백, 찬성과 반대의 2분법이 아니라 다양한 시점에서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한 선진국이다.
색안경을 벗고, 여러 색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자. 그 무지개는 사라지지만 또 떠오를 테니.
김학선 UN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미래차연구소장
<본 칼럼은 2021년 2월 18 경상일보 14면 ‘[경상시론]무지개는 또 뜬다’ 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