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성의 도시라고 불릴 만하다. 물론 국내 곳곳에 성은 있었고 그 규모나 보존상태로 따진다면 울산의 성들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울산처럼 여러 형태의 성을 가진 도시도 없다. 장성운이 쓴 <울산의 옛성(울주문화원, 2003)>에 의하면 울산에는 30여개 성의 유적이 있는데 그 중 그나마 윤곽이 뚜렷한 것은 13개 정도라고 한다. 주민보호와 행정적 목적을 위한 2개의 읍성(邑城)(울산읍성, 언양읍성), 군사가 주둔하던 1개의 육군 영성(營城) (경상좌도 병영성)과 2개의 수군 진성(鎭城)(서생포성, 개운포성), 2개의 왜성(倭城)(서생포왜성, 울산왜성), 4개의 산성(관문성, 기박산성, 단조성, 과부성), 말을 기르기 위해 만든 1개의 마성(馬城), 그리고 성보다는 규모가 적은 성채에 해당하는 유포석보(柳浦石堡)이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관문성은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수도인 경주를 방어하기 위해 동쪽 기박산성 부근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순금산과 천마산을 거쳐 치술령까지 12㎞에 걸쳐 축성했다. 여느 성들과는 달리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동서로 길게 쌓았기에 신라의 만리장성이라고도 불린다.
병영성은 조선 태종7년 (1417)에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의 영성으로 축성돼 고종 31년(1894)까지 근 500년간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는 좌병사 이각이 울산군수 이언함과 함께 동래성으로 피신하는 바람에 제대로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함락됐다. 축성 600주년이 되는 2017년까지 동문을 비롯한 주요 부분들을 복원하고 정비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기박산성은 왜구가 침범하던 동해안을 내려다 보면서 경주로 향하는 길목을 방어할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을 갖췄다. 특히 임진왜란 중에는 의병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많은 활약을 했다. 임진왜란 7년동안 기령고개를 중심으로 ‘동대산 전투’라 불리는 여러 번의 전투가 벌어졌었다. 부근에 있는 신흥사의 지운스님은 의병들에게 양식을 제공하고 병영성 전투에도 승병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단조성은 신불산과 영축산의 중간 능선에 있는데 임진왜란 때 부산에 상륙한 왜병의 북상 길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유리한 위치였다. 왜적들이 여러 번 침공하였으나 천혜의 지형적 험난함으로 인해 실패한 후 서쪽으로 우회해 신불산 뒤로 공격, 함락시켰다. 그때 의병들이 흘린 피가 못을 이루었고 아직도 늪지대의 이끼가 붉으스레한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한다. 과부성은 신불산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하여 단조성의 지성이라 불리웠다. 단조성보다 더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서 성 인근의 남자들이 다 죽고 여자들만 남았다고 하여 과부성이라 하였고 많은 의병들을 한꺼번에 앞 들판에 묻었다고 하여 무덤들이라 한다. 개운포성은 수군이 주둔하던 곳인데 임진왜란 중에는 3차례의 전투가 있었다.
서생포 왜성은 왜병들이 임진왜란 때 침략의 후방기지 역할을 위해 축성했다. 가토오 기요마사와 사명대사의 강화회담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왜군 철수시 최후의 거점이었다. 울산왜성은 학성 혹은 도산성이라고도 불리웠는데 임진왜란을 마무리하는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유포석보는 강동면 정자리에 있는 성보다는 규모가 작은 성채이다. 동해안에 수시로 출몰하는 왜구의 침입 방어를 위한 좌병영의 지성 역할을 담당했다.
세월의 흐름과 개발 등으로 울산의 성들은 방치되고 훼손되고 있다. 그와 함께 애국심 하나로 모든 것을 던져 치열하게 싸웠던 의병들의 이야기도 망각되고 있다. 병영성과 관문성 등 몇 개는 다행히 보전 및 복원작업이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접근보다는 다음의 4가지를 결합할 종합적 방안이 필요가 있다.
첫째는 이 성들과 연관해 한일관계를 되집어 보는 역사교육 프로그램, 둘째는 이 성들을 탐방하고 해설을 듣는 답사 프로그램, 셋째는 의병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행군하는 트레킹 프로그램, 넷째는 의병들의 풍찬노숙을 경험해 보는 캠핑 프로그램이다.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사의 항일투쟁기를 추가하자. 이렇게 되면 역사공부, 애국심 고취, 심신 수련뿐만 아니라 인성 고양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명군들의 이야기도 추가하면 일본과 중국 관광객들도 유치할 수 있는 국제적 관광사업으로 확장될 여지도 충분하다.
임진혁 UNIST 경영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5년 8월 7일 경상일보 18면에 ‘[기고]한일역사문화관광 종합계획이 필요하다’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