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에 부임하고서 지난 2년 동안, 태화강을 자주 찾아보았다. 태화강에 가면, 경주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 울산에 잠시 들렀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버스 정류소에서 신작로 길을 따라 한참 걸은 후에 텅 빈 태화강 다리를 걸어서 건넜던 기억과 함께, 내게 울산의 첫 인상은 그저 조용하고 특별하지 않은 시골이었다. 아마도 울산의 공업화가 시작되기 전인 듯하다.
지난 60년간 울산은 한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성장하면서,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산업들이 최고 수준에 올라, 세계가 알아주는 도시가 되었다. 오염되었던 태화강도 기적적으로 되살아나서, 지금은 산업과 자연이 멋지게 어우러져 매력적인 도시가 되었다. 이대로 발전하면, 울산은 머지않아 세계인들이 와서 살고 싶어 할 명품 도시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러나 울산을 비롯하여 한국에는 커다란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바로 ‘탄소 중립’이라는 거센 세계적인 요구다. OECD에 속한 37개의 국가들 중에서, 한국은 이스라엘과 네덜란드 다음으로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이 어려운 여건에 놓여 있다. 인구밀도가 높아 CO₂ 발생 밀도가 높은 반면에, 이를 흡수할 녹지는 적어 CO₂ 방출과 흡수 간의 균형이 안 맞기 때문이다.
한국의 CO₂ 방출량은 연간 6억 톤으로, 녹지에서 흡수할 수 있는 양의 열배에 달한다.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면 지금의 녹지를 고스란히 보존한다 하더라도 CO₂ 발생량을 10배나 줄여야 한다. 지난 20년간 재생에너지 확대에 전력하여 온 독일조차 CO₂를 불과 30%밖에 줄이지 못하였다는 사실에서, 앞으로 20년간 CO₂를 줄이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할 수 있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인구밀도는 ㎢당 38명으로 우리보다 10배나 낮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탄소 중립 목표를 2050년까지 달성하는 과제를 큰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인구밀도가 ㎢당 300명 이상인 OECD국가들 중에서는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만이 탄소 중립에 서명하였다.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일본은 원자력을 비장의 무기로 정했다. 인구밀도가 ㎢당 118명인 유럽연합도 총 에너지에서 원자력의 비중을 현재의 약 10%에서 2050년까지 20%로 대폭 올릴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내 대부분의 환경단체들은 우리나라가 탄소 중립을 위해 원자력을 사용하는 데에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는 사실상 원자력과 다르지 않다. 태양광은 섭씨 백만 도의 태양에서 수소 원자핵들이 핵융합으로 만들어지는 원자력 에너지이고, 풍력 발전은 태양광에 의한 대기의 운동을 이용하므로 근원이 원자력이다. 지열의 대부분은 땅속의 방사성 동위원소들의 핵붕괴 열에서 나오는 원자력이다. 바이오에너지는 지상의 잎이 태양광을 흡수하고 지하의 뿌리는 지열을 흡수하여 생기니, 근원은 원자력이다. 우주의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원자력이며, 따라서 재생에너지는 자연산 원자력이라고 할 수 있고, 원자력발전은 양식 원자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재생에너지도 방사능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태양광으로 매년 30만 명이 피부암에 걸리고, 지열의 일부인 방사성 라돈이 전체 폐암의 3~20%를 유발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바이오에너지원인 식물에도 땅에서 흡수된 방사능이 극미량이나마 들어 있다. 머지않아 인류가 마주할 우주에는 자연 방사능이 더욱 강하다. 따라서 모든 에너지에서 나오는 방사능을 과학기술로 감시하고 차단하여 충분히 안전하게 관리하는 기술은 인류의 미래에 필수적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만을 고집한다면, 기후 보호를 위해 에너지 사용을 대폭 줄여야 할 것이다. 일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GDP에 비례하므로 수십 년 전의 생활수준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건강과 환경도 과거로 돌아가는 격이 될 것이다. “빈곤이 최대의 오염원이다”고 한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생각난다.
탄소 중립을 2050년까지 달성하여야 하는 인구 고밀도국인 한국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인구밀도가 한국 평균의 두 배나 되는 울산이 최근 ‘2050 탄소중립 도시’를 선언하였다. 비록 넓은 녹지를 가졌지만, 울산이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와 수소만으로는 부족하며, 여기에 원자력을 융합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이 도전의 첫걸음으로, 머지않아 서생면에 완공될 새울원자력발전소와 원전해체연구소를 첨단 4차산업혁명의 본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여 창의적이고 열린 문화를 구축하고, 시민들의 신뢰를 다져야 할 것이다. 이로써 울산이 가장 안전하고 현명한 ‘2050 탄소중립 도시‘로 세계 속에서 우뚝 서기를 희망해 본다.
황일순 UNIST 석좌교수·세계원전수명관리학회장
<본 칼럼은 울산매일 2021년 3월 15일 18면 ‘[황일순칼럼] 울산에 거는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