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명. 유엔이 2019년 발표한 ‘세계 인구 전망 보고서’의 2050년 예측이다. 불과 100여년 전 20억 명이 살았던 지구라는 행성에 100억 인구가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급격한 산업화와 폭발적인 에너지 수요를 감당해온 화석연료는 더는 축복이 아닌 저주의 단어세계가 하나같이 ‘2050년 탄소 중립’을 외친다.
친환경 에너지 개발과 함께, 전기차와 수소차 생산이 시급한 해결과제로 등장했다. 하지만 여기에 들어갈 막대한 전기에너지가 충분히 공급될 수 있을까. 특히 한국은 탄소중립과 함께 탈(脫) 원전까지 추진하고 있다. 원전을 대체할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위해선 막대한 면적이 필요하다. 더구나 한국처럼 살기 좋은 기후, 달리 말하자면 적당한 햇빛과 바람이 있는 곳에서 이런 재생에너지 발전을 전천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전력 가격의 급상승 또한 감수할 수 있을까. 원전 없이 거대 고밀도 아파트 도시와 대중교통, 기간산업에 지속적인 에너지 공급이 가능할까.
이런 의문의 해결책이 될 무궁무진한 친환경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 궁극의 대안이 있다. 수소를 원료로 하는 수소핵융합 에너지의 실용화가 그 답이다. 태양이 불타오르는 원리를 그대로 모사한 핵융합발전은 지구온난화와 자원 고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탈원전의 빌미가 되는 방사성 물질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핵융합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삼중수소는 반감기가 12년에 불과하다. 저준위 방사능 물질 기준보다 아래다.
수소핵융합 에너지는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마지막 대용량 청정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실현성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었다. 핵융합발전을 하려면 태양보다 뜨거운 섭씨 1억도 이상의 플라스마를 구현해야 한다. 1950년대부터 미국과 옛 소련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다가 결국 강한 자기장 속에서의 고온 플라스마 물리학의 이해 없이는 핵융합발전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체계적인 핵융합 플라스마 물리 기반이 1970년도 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문제는 지구 위에서 천문학적 온도인 1억도의 플라스마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핵융합 에너지는 그간 ‘항상 50년 후에’라는 냉소와 함께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들어가는 연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미국의 레이건과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 간 합의에 따라 국제핵융합연구가 1980년대에 시작됐지만, 이후 20~30년간 좌초되어온 아픔이 있었다.
이젠 다르다.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는 지금 인류 최대의 에너지 실험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을 포함, 미국·유럽연합(EU)·러시아·일본·중국·인도 등 세계 7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가 그것이다. 지난해 4월 조립동 건설을 완공하고, 5월부터 1억도의 플라스마를 담을 토카막 조립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난달 27일 낭보가 전해졌다. 현대중공업이 제작해 보낸 진공용기 1호 섹터가 설치에 돌입했다는 소식이다. 지난 2월 기준 공정률 72.7%. 앞으로 4년 뒤인 2025년이면, 이 실험로에서 1억도에 이르는 첫 플라스마가 타오른다. 2050년쯤이면 핵융합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해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주요국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ITER는 보수적으로 만든 실험로인 만큼, 그간 쌓아온 기술로 실제 전기까지 생산할 수 있는‘핵융합실증로’를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다.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이다. 핵융합 에너지 개발에 가장 공격적이고 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다. 수소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설비로 10억W 발전을 위한 설계 및 연구개발과 함께, 첨단 연구 단지 착공 (2018년) 등 정부와 공공부문 외에도 민간의 진출 착수를 시작했다. 최근 신화사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핵융합 유도 토카막 실험장치(EAST)를 통해 고성능 플라스마 발생 400초 동안 유지, 플라스마 중심 온도 1억도 장기 유지 등 새로운 목표에 도전할 예정이다.
EU는 ‘그린 뉴딜’선언 이전에 유럽 에너지 기술계획에 수소핵융합을 중장기적 기술 포트폴리오로 인식해 연구개발을 진행했으며, 2040년대 실증로 건설을 추진 중이다. 영국은 이미 2020년에 첨단기술센터 건립을 중심으로 소형 핵융합실증로 설계를 시작했다. 미국은 올해 미국국립학회가 2050년까지 저탄소 에너지원 수소핵융합 실증로 개발 운영에 대한 결론을 도출했다. 일본은 2030년대 실증로 설계에 착수해 50년대 전력생산을 한다는 실증 계획을 수립했다. 국가 단위뿐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등도 핵융합 발전에 투자하고 있다. 기업가들이 ‘돈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한국은 ITER 참가국이긴 하지만 수소핵융합에너지 개발에 후발주자다. 1995년에서야 ‘국가핵융합연구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그다음 해 ‘한국의 인공태양’ KSTAR(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사업을 착수했다. 당시 우리 기술진으로서는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연구장치였다. 2003년엔 ITER 사업에 공식 가입하면서 국제무대에도 합류하게 됐다. 2008년엔 KSTAR를 완성해 국제무대에서 명실공히 최고의 핵융합 플라스마 물리연구 장치로 자리 잡았다. 최근엔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최장시간 운전하는 세계 기록을 올리는 등 연구 장치로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도 많다. 세계 최고의 연구 장치에 걸맞은 연구기반 확충과 필수 연구인원 증원이 시급하다. KSTAR의 노후화에 대한 대비 및 보조 장비의 증강 등이 잘 해결되어야 다음 과제인 핵융합실증로 개발에 필요한 과학기술과 인력 조달에 차질이 없다. 핵융합발전이 상용화로 가려면 지금의 연구장치나 실험로를 거쳐 핵융합으로 직접 전기 생산을 할 수 있는 ‘핵융합실증로(DEMO)’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11월 법인 독립한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 수소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를 추진한다지만 KSTAR와 ITER에의 참여만으로 실현성 있는 핵융합실증로 건설이 쉽지는 않다.
필자는 1984부터 13년간 미국의 토카막 장치에서 연구하면서 순간적이지만 1000만W의 핵융합 에너지 방출실험을 경험한 바 있다. ITER 사업에도 과학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지난 10여 년을 봉사해왔다. 1969년 대학 1학년 수업시간에서 플라스마 물리학이 새로운 분야이고 미래 에너지에 기여할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인연이 되어 평생을 이 길로 걸어오게 됐다. 돌이켜보면 한국은 5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플라스마 물리를 강의할 교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제 세계 최고 연구 장치인 KSTAR를 중심으로 최고급 물리학 논문을 발표하고 KSTAR 건설 및 운전의 경험을 통해 성장한 우리의 연구원들과 유수 기업들이 ITER 건설에 동참하고 있다. 얼마나 짧은 시간에 우리의 수소핵융합 에너지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핵융합실증로의 목표가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탄소중립 완성시기인 2050년이라면, 지금은 최첨단 극한재료와 고효율 열전환 장치, 삼중수소 생산 장치 등 후속 핵융합실증로 연습 장치가 필요한 시기다. 현대중공업·고려제강 등 KSTAR와 ITER 사업 추진 과정에서 성장한 국내 유수 기업들의 기술력 연속성도 유지해야 한다. 핵융합실증로 건설에 필수인 부대 장치들의 효율 증대를 위한 실험 및 검증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로 환원돼 안정된 고급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것은 덤일 것이다.
눈을 감고 꿈을 꾸어 본다. 현명한 기획에 국가 재정이 뒷받침된다면 아마도 한국은 머잖아 수소핵융합실증로 개발에 선두주자가 돼, 단군 이래 최대의 과학기술력과 부의 창출로 세계의 선두에 설 것이다.
박현거 울산과학기술원(UNIST) 물리학과 명예교수
박현거 명예교수
울산과학기술원(UNIST) 물리학과 명예교수. 서던캘리포니아대 물리학 학부를 거쳐,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응용플라스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프린스턴대 플라스마 물리연구소에서 24년간 핵융합 플라스마 연구를 했다. 2008년 귀국, 포항공대에 이어 UNIST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2020년 세계 플라스마학계의 3대 상 중의 하나인 챤드라세카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본 칼럼은 2021년 4월 5일 중앙일보 26면에 ‘[박현거의 미래를 묻다] 탄소중립 ‘궁극의 대안’…인공태양에 세계가 뛰어들었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