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국내 통계에 의하면 우울증과 조울증 등의 기분장애 환자가 100만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4년 사이 30.7%가 증가했습니다. 특히 이 중에 20대가 17%로 가장 많았습니다. 북미에서는 1년 동안 남성의 3~5%, 여성의 8~10%가 우울증을 겪는다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사회적 비용이 가장 큰 질병이 우울증입니다. 우울증 치료에 1달러를 투자하면 4달러의 건강과 경제적 혜택을 얻을 수 있다며 정신보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질병인데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을 통해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특히 아직 인생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여러 변화에 노출되는 청년들은 더 취약할 수 있기 때문에 우울증에 대해 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울증은 우울하고 슬픈 느낌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과 같은 감정의 변화나 흥미의 감소를 포함하여 식사, 수면, 피로 등의 신체적 반응, 죄책감, 집중력 저하, 자살 사고 등 생각의 변화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슬프다는 소리는 안하는데 종일 누워서 깊은 잠은 못 자고 집중을 못하는 경우도 우울증일 수 있습니다. 뇌의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우울증은 단일한 원인에 의한 질환명이 아닙니다.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로 뇌 활성이 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현상일 뿐입니다. 마치 호흡기를 통해 산소 공급이 어려워진 원인이 세균 감염일 수도 있고 천식일 수도 있지만 환자가 느끼는 것은 모두 호흡곤란인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은 힘든 사건으로 인해 우울증에 걸립니다. 증상은 비슷한데 원인이 잘 찾아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뇌졸중과 같은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변화로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지만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같은 전신질환과 연관이 될 수도 있으며 약의 부작용에 의해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우울증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습니다. 나의 ‘노력’으로 이겨내지 못하면 계속 ‘정신과약’에 의존해야 할 것 같다는 두려움을 얘기합니다. 정도가 심한 우울증에는 약물치료가 효과적입니다. 가벼운 책을 읽는 것도 힘든 단계에서는 상담에 필요한 뇌의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심지어 자살생각 외에 다른 생각이 전혀 불가능한 경우에는 전기치료도 합니다. 얼마 전까지 표정이 전혀 없고 질문에 대답도 못하던 환자가 엄마와 웃으며 대화하는 극적인 변화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약물치료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행동패턴으로 인해 재발할 수 있습니다. 원래 좋은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회성 사건으로 생각, 감정, 행동에 나쁜 변화가 생겼던 경우라면 약물치료로 원래 패턴을 찾으면 재발할 확률이 적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이전까지는 큰 문제가 없던 행동 패턴이 내가 성장하면서 잘 작동하지 않을 때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업, 취업, 연애, 결혼, 육아 등의 여러 단계에서 새로운 것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한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불안으로도 힘든데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실패감과 후회에 사로잡혀 에너지가 바닥나고 다음 시도를 못하게 됩니다.
우울은 백해무익한 감정이 아닙니다. 먹이를 찾아 나섰던 동물이 목표를 계속 이루지 못하면 적당히 실망하고 에너지를 아껴 계획을 수정해야 생존에 유리했을 것입니다. 같어 방식을 고수했다가는 굶어 죽어 자손을 남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경우에는 더 좋은 먹잇감을 찾지 못해 생존에 불리했을 것입니다. 적당한 정도로 모험을 하고, 실패가 연속되면 에너지를 아꼈다가 다음 기회를 노리는 개체가 생존에 유리했을 것입니다.
인간도 적당한 휴식과 함께 계획한 목표를 이뤄 적절한 빈도로 성취의 기쁨을 느끼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우울증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면, 식사, 운동이 우울증 치료와 예방의 기본이 됩니다. 사회적 동물이라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내가 머릿속에서 세운 목표를 이룰 때 우울해지지 않습니다. 너무 크고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실패감을 느끼는 것만 반복한다면 쉽게 우울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적절한 목표들을 세우고 성취의 기쁨을 적당히 느낄 수 있어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칼럼은 경상일보 2021년 4월 9일 19면 ‘[정두영의 마음건강(14)]우울증에 대한 오해- 환자의 역할과 약물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