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인터넷 없이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맞았더라면 우리의 고통이 몇배 더 컸을 것이다. 빠른 소통과 정보와 함께 과학기술의 발전도 빨라져서 10년 걸린다던 코로나 백신들도 단시간에 개발되어 벌써 집단 면역을 자랑하는 나라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세계가 빨리 움직이는 만큼, 인류의 재앙이 될 기후변화의 속도도 빨라지는 듯하다.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관한 세계 기후정상회의가 열렸다. 작년에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하였던 주요국 정상들은 CO2 감축 목표를 더 높이겠다고 약속하였다. 때맞추어, 유럽연합은 원자력을 녹색 에너지로 규정하고 재생에너지처럼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고 발표하였다.
지중해성 기후 덕분에 에어컨 없이 지냈던 유럽에서 금세기에 들어서자 여름마다 만명 이상이 고온으로 사망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연합은 깐깐하게 녹색 에너지 분류기준을 세웠고, 여러 전문가 검토를 거쳐서 원자력을 녹색 에너지에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약 3개월간의 최상위 과학위원회 검토를 통과할 경우, 이는 공식화된다.
체르노빌의 방사능 피해를 겪은 데다 후쿠시마 사고에 놀라서 원자력을 강하게 거부하였던 유럽연합이기에 이번 결정은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았다. 미국과 영국은 소형 원전에 국한하여 녹색 에너지로 규정하였으나, 유럽은 대형 원전까지 포함하였다. 대형 원전에 제3세대의 기술이 반영되어 안전성에서 재생에너지에 못지않다는 결론에서다.
울산 서생면에 건설 중인 제3세대 원전 APR1400은 미국 안전 승인까지 받았으니,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유럽 국가들이 신규 건설에 한국원전에 눈독을 들일만하다. 지금까지 유럽연합은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수소만을 녹색 수소로 인정하여 와서, 단가는 비싸고 생산량은 적었다. 이제 유럽은 원자력발전으로 값싼 녹색 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이번 유럽연합의 결정에 대해 독일과 오스트리아 같은 탈원전 국가들이 반기를 들고나왔다.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폐기물에 대책이 불확실하여 미래 환경 피해 가능성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결정을 뒷받침하는 유럽공동연구소의 방대한 보고서에는 이미 그 답이 자세히 나와 있다.
즉 유럽연합은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통한 고준위폐기물의 부피 감축을 장기 대책으로 인정하였다. 사용후핵연료 무게의 약 1%에 달하는 플루토늄을 재처리로 회수하여 핵연료로 만들어 원전에서 에너지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고준위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더러, 핵무기로 전용될 위험도 없앨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번 유럽연합의 결정을 우리나라의 탄소 중립 정책 수립에 반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사용후핵연료 문제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우리는 유럽공동연구소의 자원 순환경제 논리에 주목할 만하다. 국내에도 원자력연구원을 중심으로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을 개발하여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할 역량을 갖추어 왔기 때문이다.
습식재처리의 문제점인 핵무기 전용 위험을 차단하는 유럽 특유의 감시제도가 재조명을 받았다. 반면, 파이로프로세싱은 용융염을 사용하는 건식 기술이자, 고순도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다는 장점까지 있다. 그래서 한-미 양국은 실용화에 필요한 기술성, 핵확산 저항성과 경제성까지 철저한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이 검증이 끝나면, 일본의 습식재처리 공정과 비교할 수 없는 차세대 기술의 모습이 보여질 전망이다.
일본의 실패만 보고 재활용에 반대하는 진영도 유럽공동연구소의 순환경제 분석결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은 습식재처리와 제4세대 고속로 원전을 연동하여 사용후핵연료를 100% 재활용할 경우에, 추가 비용이 현재 원자력 발전단가의 20%를 넘지 않으며, 머지않아 기술을 더 발전시켜 고준위폐기물을 거의 없앨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국내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은 태양광 모듈용 폴리실리콘 생산기술과 유사하므로, 반도체 산업과 융합하면 비용을 이보다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제4세대 고속로 원전은 핵연료 순환경제를 목표로 주요 원자력 국가에서 개발과 실증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제3세대 원전이 못하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풀고, 나아가 우라늄 자원을 100배 이상 더 오래 쓸 수 있다. 금세기 중에 제4세대 원전이 대폭 확대되어 원전의 주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자원순환경제로써 확인된 우라늄으로 전 세계가 수천년간 쓸 수 있게 된다.
그 이후에는 바닷물에 녹아있는 엄청난 양의 우라늄을 사용하게 된다. 최근 해수에서 우라늄을 추출하는 인공 해초 신기술이 개발되어 금세기 내에 경제성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바닷물에서 우라늄 자원을 뽑아 쓰면 해저의 모래에서 녹아 나와 되채우므로, 저절로 서서히 재생된다. 그래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으로 국토를 보호하면서 녹색 에너지를 만들고, 이로써 자원 지속성과 산업 경쟁력까지 갖춘 순환 경제형 탄소 중립 전략이 수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황일순 UNIST 석좌교수·세계원전수명관리학회장
<본 칼럼은 울산매일 2021년 5월 10일 18면 ‘[황일순칼럼] 유럽의 녹색 에너지, 원자력’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