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바꿔야 합니다.” 모임 때마다 꺼내놓는 S씨의 주장이다. ‘울산국립산업기술박물관’이 아니라 ‘대한민국산업기술박물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울산국립’의 차이는 단순한 문구의 다름에 그치지 않는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모임 멤버들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이름은 곧 비전’이란 인식이 그 같은 주장과 공감의 근거다.
애초 정부의 구상은 세계 최대 규모의 산업기술박물관을 짓겠다는 것이었다. 근대화와 산업화 반세기만에 최빈국에서 세계 최고 반열의 산업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의 기적 같은 발자취를 총망라해 보여주겠다는 계획이었다. 사업비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을 만큼 통 큰 구상이었다. 구상은 2011년 말 공론화가 시작됐고, 당시 정부가 염두에 둔 곳은 서울 용산이었다.
2013년 9월 부지가 울산으로 결정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사업비가 과도하게 잡혔다거나 사업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정부도 당초의 야심찬 계획에서 조금씩 물러서더니 총 건립비를 2000억원까지 낮추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논란의 핵심은 ‘울산’이라는 지역적 한계였다. 서울이 아닌 소위 지방이어서 관람객이 많지 않을 것이란 선입견이 그 바탕이었다. 크게 지었다간 손님이 없어 욕먹을 터이니 작게 지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 과정에서 이름 또한 울산국립산업기술박물관이 돼버렸다. S씨는 이 대목을 가장 안타까워한다. “놓쳐선 안 될 엄청난 차이를 간파하지 못하는 바람에 ‘대한민국’이란 브랜드가 묻혀버렸다. 세계에 내놓아야 할 대한민국의 기념비적인 박물관이 ‘울산’이란 지역적 틀 안에 갇혀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당초의 야심찬 구상과 규모가 옹색해졌고, 박물관의 정체성과 비전마저 옹졸해질까 걱정스럽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 7월 말 울산국립산업기술박물관 건립 사업에 대한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신청서가 제출됐다. 총 사업비 4400억원, 전체 건축면적 8만426㎡ 규모였다. 시민 30만명 서명운동과 대통령 공약사업을 배수진으로 삼은 울산이 총력을 기울인 결과다. 하지만 예비타당성 조사는 난항을 거듭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는 10월쯤 중간보고서가 나오는 모양인데, 최근까지도 사업비 감액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규모 축소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래선 대한민국을 대표할 세계적인 산업기술박물관을 만들기 어렵다.
대한민국산업기술박물관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산업기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자리에 담아내는 ‘메카’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반세기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핵심 산업기술을 전승하는 기념관이며, 미래 산업기술 발전의 비전을 제시할 아이디어 창고여야 한다. 그 가치와 임무가 박물관 입지에 따라 달라질 순 없는 것이다. 이제라도 이름을 울산국립산업기술박물관에서 대한민국산업기술박물관으로 바꾸는 방안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세상의 모든 박물관은 과거와 소통하며 현재를 발견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공간이다. 울산 산업기술박물관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사적 기념물이 됐으면 한다.
김학찬 UNIST 홍보대외협력팀장
<본 칼럼은 2015년 8월 18일 경상일보 18면에 ‘[독자위원칼럼]‘대한민국산업기술박물관’이어야 한다’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