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걸려온 아내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일이 잘 안 풀려서 속이 상한 모양입니다. 제 가치관에 맞는 일이 아니지만 아내가 원하는 일이니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려 이런저런 위로의 말을 해줍니다. 별 반응이 없어 내가 도움이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대화 주제가 바뀌어 제가 문자메시지로 물었던 것에 답을 합니다. 아이 인터넷뱅킹은 신청하지 않았다며 어디에 쓰려는지 묻습니다. 은행에 가서 아이 계좌에 이체를 하면서 함께 신청해달라고 했는데 잊었나 보다 생각합니다.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니 나중에 하자고 대답합니다. 여기까지는 특별히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왜 신청을 해야 하는지 다시 물어봅니다.
“이체가 필요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그게 언제 어떻게 필요한데? 당장 쓸 계획은 없다니까. 왜 필요한지 알아야 만들지 않겠어?”
비슷한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다 결국 저는 화를 냅니다.
“마트 가는 김에 계란 한판 사다 달라는 부탁을 하려면 언제 어느 음식에 몇 개를 넣을 계획인지 알려줘야 된다는 거야?”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남편이 짜증을 내니 아내는 더 속이 상한 것 같습니다. 남편은 기껏 위로를 한 것에는 고맙다는 소리도 못 듣고, 동의했던 부탁에 갑자기 의도를 반복해서 물으니 기분이 상했습니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빠질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오해를 풀어가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위로가 큰 도움이 되었는데 걱정이 많다보니 고맙다는 얘기를 깜빡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대답을 못한 메시지가 생각이 났나 봅니다. 그리고 은행원이 이체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기에 인터넷뱅킹 신청 목적을 자세히 알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내의 의도는 남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는 제 위로에 시큰둥했던 것인지, 아이 계좌도 원하지 않았던 것인지 걱정했다며 오해를 풉니다.
사람들은 가족과 같은 중요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는 중요한 정보이니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쉽게 뜻이 잘 전달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은 자주 표현해줘야 전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해가 잘 생깁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문장들인 것도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의도를 잘 전달하려면 방식도 좋아야 합니다.
듣는 사람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상대의 의도가 헷갈려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면 차분히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위로를 잘 해주고 싶었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고 먼저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부탁을 들어주기 싫어서 그런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잘 설명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비해 어린아이와의 대화는 의도가 뻔히 보여서 조금 더 쉬운 것 같습니다. 외삼촌 가족이 왔다고 밥 먹으러 오라는 외할머니의 전화에 아들은 안 가고 집에 있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게임을 더 하고 싶었는데 시간제한이 걸리자 속이 상해 있습니다. 울먹이는 아이를 안아주면서 재밌는 게임을 못 해서 속상하겠다며 달래줍니다. 최근에 안과에 가서 안약을 받아온 얘기와 게임 시간을 함께 정했던 얘기도 해줍니다. 눈이 건강해야 나중에도 재밌는 것들을 계속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달래어 집을 나섭니다. 삐쳐서 저녁도 안 먹겠다고 하더니 곧 사촌동생과 나란히 밥을 잘 먹고 깔깔대며 놉니다.
가끔 다른 교수님들이 십대 자녀나 이십대 학생들과의 대화로 자문을 구하십니다. 아기가 울면 난감하지만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젖었거나, 졸린 것 등 몇 가지 안에 답이 있습니다. 자녀가 자라면 마음을 짐작하기가 더 힘듭니다. 혹시나 내가 말을 잘못해서 마음의 문을 닫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좋은 의도를 적절한 방식으로 전하면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으며 마음을 열고 듣겠다는 자세도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네가 요즘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혹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용돈을 좀 올려주면 도움이 될까? 그게 아니라 다른 거라면 내게 알려주면 좋겠어.’ 이런 시도에 당장 반응이 없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적어도 내 마음이 전달되어 마일리지처럼 적립이 될 것입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칼럼은 경상일보 2021년 5월 14일 27면 ‘[정두영의 마음건강(15)]대화 속 오해와 마음의 상처-의도와 방식’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