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물체는 색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색이라는 것이 그 특정 물체 고유의 물리적 속성은 아니고 그 물체를 ‘나’라는 사람이 ‘빛’이 있는 환경에서 볼 때 머리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지되는- 속성이다. 즉 색을 본다는 것은 ‘빛’과 ‘물체’ ‘사람의 시지각 특성’ 이렇게 세 파트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으로 같은 물체를 두고도 보는 사람이나 물체를 비추는 빛이 바뀌면 색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빛을 바꿈으로써 물체의 색을 다르게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다. 집안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새로운 가구나 조명 기구의 설치가 아니라 조명의 빛 특성만 잘 고르면 마치 가구와 벽지의 색을 새로 바꾼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예전 백열등이나 형광등 시절에는 빛 특성이 거의 고정되어 있었으나 LED 조명의 등장으로 빛 특성을 공학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특정 색 계열이 강조되어 보이게 한다거나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내도록 채도를 낮춘다거나 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 빛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물체의 색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것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육점 진열대 조명이 붉은 이유는 고기를 더 신선하고 맛있어 보이게 하기 위한 것임을 대부분의 소비자가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의문이 하나 생기게 된다. 물체가 어떤 빛 환경에서 보느냐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면 어떤 색을 그 물체의 진짜 색이라고 해야 할까? 색채과학분야에서는 태양광이나 불과 같이 실제 자연에 존재하는 광원을 기준 광원으로 정하고 기준 광원에서 보여지는 색을 진짜 색(엄밀히 말하자면 기준색)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의문 하나. 그렇다면 진짜 색으로 나타내는 조명이 좋은 조명일까? ‘연색지수’라는 조명의 색 특성 평가 표준에 따르면 그렇다. 하지만 소비자가 좋아하는 조명이 진짜 색을 잘 표현하는 조명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 또한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의 선호를 반영한 조명 색 특성 평가 지표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표준으로 제정된 바는 없다.
곽영신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색채과학
<본 칼럼은 2021년 6월 2일 경상일보 14면 ‘[곽영신의 색채이야기(6)]물체의 진짜 색’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