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진단명 중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중에 적응장애가 있습니다. 시험에 떨어지거나 연인과 헤어지는 등 스트레스 사건 이후에 정서나 행동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런데 만약 증상의 정도가 우울증 진단기준을 만족할 정도면 적응장애가 아닌 우울증으로 진단명을 붙입니다. 불안장애나 알코올중독에 해당이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적응장애가 아닌 해당 진단명을 붙이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우울증 클리닉, 공황장애 클리닉과 유사하게 적응장애 클리닉이라 부르지 않아 스트레스 클리닉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변화는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목표한 대학에 합격하고, 취직에 성공하면 기쁘고 설레지만 잘 해내지 못하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걱정이 너무 과도해져서 잠을 못 이룬다거나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거나 친구들과의 모임을 피하게 된다면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인생에 이런 순간들은 끊임없이 찾아옵니다.
특히 초기성인기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짧은 시간에 다양하게 찾아옵니다. 무슨 전공을 선택하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할지, 어떤 친구들을 사귀고 연애에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지 산 넘어 산입니다. 눈앞의 일들로도 허덕이는데 결혼, 육아, 집장만까지 떠올리면 머리가 터질 것 같습니다. 겨우 한 단계씩 어렵게 밟아가고 있는데 누군가 가상화폐로 큰돈을 벌었다거나, 유튜버로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기운이 빠집니다. 갑자기 금수저인 친구가 부러워집니다. 집값이 너무 올라 고연봉자도 집을 사려면 시간이 한참 걸린다는 뉴스에 억울하고 화가 납니다. 기초연구를 하던 대학원학생이 실험 결과가 잘 나와 기뻐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창업에 성공한 친구를 마주치고 나서는 풀이 죽기도 합니다.
작은 실패를 크게 곱씹으며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더니 숨을 못 쉴 것 같다며 공황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속이 상해서 술을 마셨더니 기분이 좀 나아지기에 반복해서 술을 먹다 술 없이 못 자는 지경이 되기도 합니다. 시작은 스트레스로 인한 적응장애였는데 우울증, 공황장애, 알코올중독 진단이 가능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정신과 진단명은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이 무너져 나온 결과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유전, 양육 환경, 스트레스의 성질이 복잡한 작용을 거쳤을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누가 어떤 정신과 질환에 걸릴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대응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신 커다란 범주로 나누어 대비하는 것은 어떨까요. 심혈관계에 유산소 운동을 하고, 척추 건강을 위해 자세를 바르게 하고 허리 근육을 강화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첫째는 부정적 감정의 처리입니다. 위협이 되는 공포, 불확실한 현실에서 오는 불안, 실패가 계속될 때의 좌절감, 상실감 등의 부정적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정적 감정에 압도되지 않을 수 있을지, 어떤 행동을 하면 기분이 나아지는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면 좋습니다. 둘째는 긍정적 감정의 관리입니다. 어떻게 의욕을 이끌어내는지, 무엇이 보상받는 느낌을 주는지, 좋은 습관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야 합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알아야 좋은 결정을 내리고 좋은 습관으로 체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인지적인 부분입니다. 집중력, 기억력, 언어 능력 등 뇌의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책을 읽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며 뇌에 자극을 줍니다.
넷째는 사회적 관계입니다. 긍정적 상호작용이 가능한 사람들을 사귀고 가족과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애착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관계에 맞는 의사소통을 나누며 나와 상대에 대해 이해하는 능력을 계속 발전시켜야 합니다.
다섯째는 규칙적으로 자고 깰 수 있는 능력입니다. 낮에는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고 밤에는 푹 잠들어 뇌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 무엇을 먹고 몸을 움직이는지 잘 조절하면 이 리듬을 맞춰줄 것입니다.
다섯 가지를 다시 요약하면 감정과 인지를 잘 관리하고, 인간관계를 잘 해나가면서, 잘 자고 체력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각각 따로따로가 아니라 서로 영향이 큰 요인들입니다. 이를 통해 삶이란 긴 여행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난관을 잘 풀어가길 기원합니다. 때로 그 난관이 너무 크면 도움을 받으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요.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칼럼은 경상일보 2021년 7월 9일 19면 ‘[정두영의 마음건강(17)]급변하는 세상, 끝없는 인생과제, 복잡한 마음건강’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