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과 회색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변에 ‘흰색’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색이라는 공통점이다. 흰색이 없는 회색은 흰색이며, 흰색이 없는 갈색은 주황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한번 간단한 실험을 해보도록 하자. 먼저 컴퓨터를 켜고 아무 편집 프로그램이나 실행시킨 후 빈 흰색 화면에 네모 상자를 만들고 그 안을 회색 혹은 갈색으로 채워본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이번에는 전체 화면을 아까 만들었던 회색이나 갈색으로 채워 보기 바란다. 자, 이제 전체 화면을 채운 색을 보자. 지금 보이는 색은 어떤 색일까?
흰색이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즉 가장 극적으로 흰색의 영향을 보기 위해서는 모니터 화면에 다른 색은 전혀 없이 아까 내가 만든 회색 혹은 갈색만으로 채운 상태에서 불을 끈 어두운 방에서 보기 바란다. 그렇다면 서두에서 말한 회색이 흰색이 되고, 갈색이 주황이 되는 ‘놀라운’ 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회색은 어두운 흰색(검정이 섞인 흰색), 갈색은 어두운 주황(검정이 섞인 주황)이기 때문에 색을 어두워 보이게 하는 밝음과 같이 있어야만 우리가 회색 혹은 갈색이라 부를 수 있는 색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처럼 주변에 아무 빛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의 색 자극만을 볼 때와 여러 색을 동시에 보고 있을 때 물리적으로 동일한 색자극이 제시되더라도 우리가 인지하는 색은 달라진다. 대낮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과 같이 주변 색들과의 ‘관계’를 통해 인지하는 색은 영어로 ‘related color’라고 하며, 깜깜한 밤 거리의 신호등과 같이 주변에 다른 색이 없어 다른 색들과는 ‘관계없이’ 색을 인지하는 경우는 ‘unrelated color’라고 한다. 우리 말로는 ‘관계된 색’, ‘관계되지 않은 색’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색채 과학 기반이 약하다 보니 이 용어들을 표현하는 표준화된 학술 용어가 아직 없다.)
또 다른 실험으로 이번에는 약간 붉은 흰색, 푸르스름한 흰색 등을 만들어 본 후 각각을 전체 화면에 띄우고 어두운 방에서 관찰해보기 바란다. 어두운 곳에서 하나의 색만 볼 때는 색의 차이에 인지도 달라짐을 느낄 것이다.
곽영신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색채과학
<본 칼럼은 2021년 9월 8일 경상일보 14면 ‘[곽영신의 색채이야기(9)]갈색과 회색의 공통점’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