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목표를 성취했을 때 기쁨을 느끼고 또 다른 목표를 떠올립니다. 선물처럼 찾아온 행운도 기분 좋지만 스스로 한 단계씩 완성했을 때의 기쁨도 상당합니다. 연말이나 새해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공부, 운동, 연애 등 여러 가지 목표를 떠올립니다. 이 목표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에 돈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돈과 관련된 목표를 우선으로 삼기도 합니다. 돈이 충분해야 가족이 아파도 마음이 든든하다며 삶의 가치 중에 우선순위를 높여 둔 것이죠.
가치에 다가가는 목표들을 성취하면 기쁨이나 안정을 느끼지만 실패가 반복되면 슬프고 무기력해집니다. 경제적 안정에 가치를 둔 사람이 첫 월급을 받았을 때 가계부를 쓰고 종잣돈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구체적이고, 측정이 가능한 현실적인 목표를 세운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에 이 목표를 이루면 기쁨도 느끼고 다음 목표도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처음 월급을 모으기 시작한 사람이 수십억 자산가와 비교하면 무기력해집니다. 일이년 노력해서는 목표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과 이런 감정을 나누며 현실적인 목표로 수정해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운동이나 취미를 통해 감정을 추스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비현실적 목표로 인한 좌절이 지속되어 무기력해지는 경우입니다. 이러면 일을 못해서든 몸이 나빠져서든 결과적으로 돈을 모으겠다는 목표에서 오히려 더 멀어지게 됩니다.
과기원 학생들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봅니다.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갖고 안정적인 삶을 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학창시절 수업을 듣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서는 더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이제 어른들 말대로 고생은 끝나고 행복만 느끼면 되나 싶었지만 대학생이 되니 당황하게 됩니다. 상황에 맞춰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수행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떤 목표에 얼마만큼 투입할지 스스로 정해야 합니다. 학과공부, 진로탐색, 취미, 인간관계 등 다양한 목표에 얼마나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지 스스로 찾아가야 합니다. 처음에 어렵지만 점점 익숙해지는 사람도 있고, 계속 난관에 부딪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험을 통해 어떤 가치가 내게 더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이 점점 발전합니다. 대학원이나 사회생활에서는 이렇게 능동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더 커집니다.
어려운 내담자는 유연성이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결과에 대한 압박만 받습니다. 성공하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까지는 성적이라도 괜찮아서 희망이 있었는데 대학이나 대학원 이후로 어려움을 겪으며 회복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심지어 휴학이나 자퇴를 하고 다른 목표를 세워보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심각한 경우에는 지속되는 자살사고를 얘기합니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에 가면 무언가 더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 외에는 고통을 참는 방식으로 버텨왔습니다. 스스로 계획해서 해야 될 것 같기는 한데, 나만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모호하게 ‘성공적인 인생’이라는 너무 멀고 측정이 불가능한 목표만 있다 보니 성취하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작게라도 성취하고 만족하는 느낌이 없으니 몸과 마음은 더 취약해집니다.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멀어지니 더 외로워지고 고통은 더 커집니다. 고통이 일상이 되어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들의 왜곡된 사고에서는 자살이 합리적인 판단이 되어버립니다.
저는 얼핏 그럴듯한 이 판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고 합니다. 만약 현대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불치병에 통증도 심하고 정신도 흐려져서 존엄성도 훼손이 된다면 죽음을 합리적인 판단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정도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런데 실패로 인한 무력감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실패가 너무 커서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은 정확한 판단일까요.
지금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이 국영수 지식을 하나 더 아는 것보다 적절한 목표를 세우고, 시도하고, 실패에서 배우는 연습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개인의 행복이나 기업의 생산성을 위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대학원생을 선발하면서 학점보다 이런 부분을 주목해서 평가하게 된다는 교수님들 이야기를 들으면 진료실에서만 느끼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칼럼은 경상일보 2021년 10월 15일 19면 ‘[정두영의 마음건강(20)]막연한 목표로부터의 실패 경험과 무력감’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