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토니(가명)가 자기가 직접 개발하는 제품에 소액 기부해달라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실었다. 토니의 본 직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캘리포니아에 있는 게임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토니가 만든 제품은 그의 본업과는 크게 상관없었다.
그 제품은 이어폰에 사용하는 간단한 아이템으로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느낀 불편한 점을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됐다. 보통 이어폰을 사용한 후에 보관하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 이어폰을 다시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는다면, 줄이 긴 이어폰의 특성상 보관 및 재사용이 번거롭다. 토니는 이런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제품을 생각해냈다.
이 제품은 플라스틱 재질로 만든 총 30cm가량의 가느다란 줄로, 간단한 후크와 자석을 이용해 이어폰을 목걸이처럼 연결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이 제품을 이용하면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을 때 목걸이 형태로 목에 걸어 놓을 수 있다. 이어폰을 사용하고 싶으면, 다시 분리해 사용하면 된다. 제품의 장점은 이어폰을 가방이나 주머니에 보관하거나 다시 꺼내는 불편을 없애준다는 것이다.
토니가 생각한 아이템은 간단하지만 좋은 아이디어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제품화하고 사업화하느냐에 있다. 이 아이템을 어떻게 제품으로 개발할 수 있을까? 토니가 실행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이 제품을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디자인한 후, 그 디자인을 3D프린팅 업체에 맡겨 간단히 제품 프로토타입(Prototype)을 만들었다.
컴퓨터 디자인과 3D프린팅 덕분에 사업자 개인 스스로 프로토타입 개발을 할 수 있고, 그 방식도 매우 빠르고 편리하다. 이렇게 만든 프로토타입을 이용해 토니 자신이 제품의 사용법과 그 유용성을 알리는 비디오 동영상을 직접 만들었다. 비디오 제작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간단히 할 수 있다. 이 비디오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 올렸다. 온라인 사이트를 이용한 자기 스스로의 제품 마케팅이다.
또한, 제작한 제품 동영상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등록하고 간단한 제품 설명과 사업계획서를 사이트에 올려 기부금을 모았다. 기부자가 자신의 주소를 입력하고 기부를 하면 제품 생산 후 제품을 직접 배송한다.
나는 페이팔을 통해 20달러를 기부했고, 4개월 정도 지난 후 국제 우편으로 제품이 배송됐다. (미국 내에서는 10달러 기부였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국제 우편료 가격을 10달러 더 지불해야 했다. 더 많은 기부를 할 수도 있다) 토니는 2년 동안 2,000명 이상의 기부자로부터 2만5천달러의 자금을 모았다. 이렇게 조달된 자금을 이용해 현재 토니는 부업으로 온라인 가게를 운영 중이며, 국제 온라인 상점에서도 판매 중이다.
인터넷, 3D프린팅, 크라우드 펀딩의 환경에선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이 가능하다. 창업이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아이디어 외에 제조·생산·마케팅·유통·자금조달 등 보완적 자산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있다. 하지만, 이제는 제조생산도 간편하게 할 수 있고, 마케팅도 큰 비용없이 가능하며, 심지어 은행 빚 없는 자금조달도 가능해졌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크라우드 펀딩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지만, 시대적 흐름을 고려하면 조만간 Kickster.com과 같은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창업에는 물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적재산권 문제인데, 토니의 제품 같은 경우 다른 사람들이 쉽게 모방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아이디어의 무단 복제를 방지하기 위해 특허권이나 디자인권 등 지적재산 보호방법을 고려해야하기도 한다. 또한 크라우드 펀딩에 있어서 대중을 상대로 한 금융사기의 범법행위가 있을 우려도 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3D프린팅, 크라우드 펀딩의 조합은 과거보다 훨씬 편리한 창업과 혁신의 기회를 제공한다.
오래 전 미국 ABC방송에서 아이디오(IDEO)라는 미국 디자인 회사에서 새로운 쇼핑카트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 적이 있다. 별로 혁신이 필요 없어 보이는 쇼핑카트라고 하지만, 5일간의 프로젝트 동안 쇼핑카트를 새롭게 만드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기되고 토론됐다. 5일 후 만들어진 쇼핑카트는 미국 슈퍼마켓의 쇼핑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가미된 혁신적인 쇼핑카트였다.
이 쇼핑카트 혁신이 보여주듯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일에는 소비자의 요구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제품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만 제대로 된다면, 새로운 인터넷 및 3D 프린팅 제조업 시대에 창업과 혁신의 기회는 더욱 더 풍성해졌다 할 것이다.
김영춘 UNIST 경영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5년 8월 21일 울산매일 17면에 ‘토니의 창업’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